조선 핵심인력 유출 심각…대비책 시급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자금난에 허덕이던 대우조선해양이 23일 정부로부터 추가지원을 이끌어내며 생사기로에서 한숨 돌리게 됐다. 정부는 추가 자금 지원의 명분으로 '이해관계자 손실 분담' 원칙을 내세웠다. 쉽게 말해 ‘사람도 자르고 임금도 낮춰’ 허리띠를 졸라 매라는 것이다.

대우조선의 대량 인력 감원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 틈을 타 국내 조선 인력을 중국과 일본 조선소로 데려가려는 중개인(브로커)이 등장했다. 취재 결과 이들은 국내 임금의 2배를 주고 거처까지 마련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과 정부 당국이 본격적인 인력 구조조정 고삐를 죌 경우, 국내 핵심 조선기술이 경쟁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어차피 파리 목숨, 3년만 일하면 가족 생계가…”

대우조선은 2015년 10월과 지난해 6월 불필요한 자산을 팔고 인력을 줄여 5조3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자구계획안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4만6000명이던 직원 수는 3만4000명으로 1만2000명 줄었다.

효과는 있었지만 수주절벽이 계속된 탓에 한계가 명확했다. 결국 23일 대우조선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신규자금 2조9000억원 추가 투입을 결정했다. 앞서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이 내걸었던 ‘추가 지원 없는 경영정상화 방안’이 실패한 셈이다. 사측이 고통분담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 탓에 대우조선 거점도시인 거제에서는 이미 정규직과 물량팀(단기 고용직)을 합쳐 수천 명이 잘려나가는 ‘해고 쓰나미’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이 틈을 타 대우조선 인력을 중국과 일본 조선소로 데려가려는 중개인(브로커)이 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제에서 대우조선 협력사를 운영 중인 한서원씨(48·가명)는 국내 대형 조선 3사를 두루 거친 베테랑이다. 1993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시작해 올해로 경력 25년차다. 2000년대 초반에는 러시아 쇄빙유조선 건조 작업에 투입되기도 했다. 협력사를 차린 뒤에는 해양플랜트 관련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대우조선이 협력사 일감 발주를 대거 줄인 탓에 경영난에 허덕이던 지난 12일, 지인을 통해 중국 사업가라는 M씨가 접근했다. M씨는 한씨에게 명함을 건네며 “언제 폐업할지 모르는 한국보다는 중국 근무환경이 낫다. 한국 임금보다 2배를 주는 3년 계약직이니 고민해보라”고 말했다.

한씨는 “처음에는 한국에서 버텨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며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것 아닌가. 3년만 일하고 오면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고민이 된다”고 밝혔다.

◇ 일본·중국 조선사 “불황이 곧 한국기술 가져올 기회”


한씨는 이직 제안을 받은 이가 자신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국내 조선소에서 2년 전 은퇴한 50대 대우조선 엔지니어에게도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제의가 들어간 곳은 일본 조선소였다.

일본 조선산업은 제2차 오일쇼크 이후 하락세를 거듭했다. 당시 조선소 60% 가까이를 폐쇄시킨 게 패착이 됐다. 90년대 조선업이 호황기를 맞았지만 이미 경쟁 추는 한국 조선소로 기운 후였다.

그랬던 일본 조선소가 최근 엔저를 등에 업고 반전을 노리고 있다. 이마바리, JMU, 쯔네이시 등이 자국물량을 기반으로 LNG선, 극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건조기술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선 및 플랜트 분야의 숙련된 한국 조선인력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 전 생산직원 이모씨(55)는 “나이는 먹어도 기술은 녹슬지 않는다. 협력사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일본으로 넘어가자고 제안해 고민하고 있다”며 “일본 조선소가 임금도 더 많이 줄뿐더러 계약관계도 확실하다. 중개인이 현지에서 머물 장소도 알아봐주고 필요 서류도 대필해 준다고 해서 (일본으로 갈) 준비도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조선소 상황은 대우조선에 버금갈 정도로 좋지 않다. 수주난에 중국 국영과 민영조선소들이 잇따라 설비 축소와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중국 최대 민영조선소인 양쯔장조선도 연내 인력의 10%를 줄일 계획이다.

그럼에도 한국 인력에 대한 중국 조선소의 수요가 줄지 않는 이유로 업계 관계자들은 “조선 산업 핵심이 인력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보다 조선 건조기술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 조선사들이 향후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조선 불황을 인재영입 적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인력유출 시 조선업황 회복 무의미…조선인력 이탈 방지책 나와야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 방침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 사진=뉴스1

특별고용업종지정 민관합동조사단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을 잃은 조선업 퇴직 인력들은 협력회사를 포함해 약 3만명에 이른다. 실직자들은 희망퇴직 위로금이나 실업 급여를 받더라도 재취업이 쉽지 않다. 결국 생계문제 앞에 일본과 중국조선사로의 이직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말 추경예산 199억6000만원을 배정해 조선 퇴직인력 재취업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비정규직 기술자는 참여하기 어렵다. 정규직 조선사 핵심 기술인력의 경우에는 고액연봉을 받았던 터라 재취업 시 임금삭감폭이 너무 큰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대우조선 경영진이 노동유연성을 늘리려면 이에 그에 대한 보완대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사 직원을 위한 연금제도나 전환 재교육 등을 시행하는 등 생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사용자가 노동계 우려사항을 불식시킬 수 있는 보완적인 제도를 만들어야만 한다”며 “커리어와 연계된 연금제도와 같은 안전망을 먼저 갖춰주고 노동유연성을 요구해야 한다. 충분한 재교육 시스템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우조선을 포함한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난에 못 이겨 생산기술직 해고를 단행할 경우 중국과 일본이 이들을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한국과 중국, 일본의 조선기술력이 평준화될 경우 향후 조선업황이 회복되더라도 예전 위상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원은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라 고용이 자유가 아니다. 핵심 인력 소수만 데리고 가서 생산성을 올릴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일본이 국내 조선인력을 흡수할 것이다. 최근 일본이 중국 물량을 많이 뺏어왔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양 연구원은 또 이 같은 현상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 고용불안 해소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국내 조선사가 현장의 핵심기술들을 다음세대로 이어지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신규 고용 없이 인력 자연감소를 방치한다면 향후 조선인력 노령화 문제에 봉착해 산업경쟁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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