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별관회의서 2년 전 회생 오판…“차기 정부, 구조조정 원칙 다시 세워야”

지난 1월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직원들이 1도크를 가로질러 이동하고 있다. / 사진=박견혜 기자

“구조조정은 철저한 자구노력에 의해 추진되며 신규 자금 지원은 어느 기업에도 없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지난해 6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에서)


“어떤 경우든 국민 혈세가 더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전제 하에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지난 2월 열린 신년 경영계획 발표회에서)


금융당국이 23일 대우조선해양에 신규자금 2조9000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금융당국과 금융공기업 양 수장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정부가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 2015년 10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4조2000억원을 지원하면서 밝혔던 “신규 자금 지원은 없다”는 약속이 백지화돼서다.


조선업계에서는 대우조선이 세금 지원을 받아 연명할 경우, 국내 조선업 산업이 저가 수주 경쟁에 함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추가지원 결정으로 대우조선 ‘자금줄’을 쥐고 있던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자신했던 대우조선 회생계획안이 사실상 ‘오판’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 ‘안정적인 영업이익’ 자신했던 서별관 회의

대우조선의 부실 문제는 2015년 5월 정성립 사장 취임 이후 불거졌다. 정 사장은 대규모 분식을 발견했다며 같은 해 7월 빅배스(Big Bath)를 선언했다. 결국 대우조선은 2015년 상반기 3조2000억원의 영업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대우조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나섰다. 산업은행은 2015년 7월21일 삼정회계법인을 통해 대우조선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다. 3개월간 실사를 진행한 끝에 내린 결론은 ‘살려야 한다’였다.

산업은행은 이 결과를 토대로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정부에 보고했다. 이에 2015년 10월22일 정부는 청와대 서별관회의(경제금융대책회의)를 열고 대우조선 추가 지원안을 통과시킨다.

그 뒤 2015년 10월26일 대우조선 노조가 ‘임금 동결 동의서’를 제출했고, 산업은행은 같은해 10월29일 4조2000억원의 자금 지원 등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대우조선 회생을 결정한 이유로 ▲수주기준 세계 1위 조선사라는 점 ▲4만명 이상의 고용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 ▲지역경제 파급력 ▲채권은행의 자산건정성 제고와 손실 가능성 최소화를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4조면 대우조선은 살릴 수 있냐”는 물음에는 “2016년부터 안정적인 영업이익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며 회생을 자신했다.

◇ 수주절벽 장기화 정부·산업은행만 몰랐나

하지만 1년 6개월도 안 돼 정부와 금융당국의 포부는 공수표가 됐다. 말을 바꿔 “4조로는 대우조선을 살릴 수 없다”며 거액의 혈세를 다시 대우조선에 투입하기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작년 내내 말해왔던 “추가적인 혈세로 대우조선을 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 무색해 진 것이다.

현재 대우조선이 처한 현실은 암담하다. 지난해 연결기준 잠정 실적이 매출액 12조7374억원, 영업손실 1조689억원, 당기순손실 2조7106억원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 4년 연속 적자다. 저유가 기조가 이어진 탓에 해양플랜트 업황은 여전히 바닥을 긴다. 2016년 영업이익 실현을 약속했던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장이 난처해진 셈이다.

결국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서는 채무재조정을 비롯한 정부의 추가지원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애초부터 부정적 전망에 귀를 닫은 게 화근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수주절벽 장기화가 예고돼 왔음에도 “돈을 넣으면 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우조선 채권단 한 관계자는 “임종룡 위원장과 이동걸 회장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서별관 회의 당시부터 근시안적인 태도로 대우조선을 바라봤던 게 화근”이라며 “지원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해야하는데 좋은 전망과 계기만을 찾다 보니, (추가 지원을) 남발하게 되는 거다. 결과적으로 채권단과 대우조선 신뢰도 모두를 떨어뜨린 꼴”이라고 밝혔다.

출혈이 불가피하게 된 산업은행 내부에서도 이동걸 회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대업 전국금융산업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조선업의 현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이 조선업 부실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라며 “서별관회의 주역들은 부실한 경영예측과 계속되는 수 조원 규모의 막대한 혈세 투입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대우조선 추가지원 결정으로 저가수주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우조선이 회생을 위해서 ‘제살 깍기’식 저가 수주에 나설 경우,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조선사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저가 수주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채권단이 이제라도 대우조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만약 이번 추가지원 외에도 대우조선의 자금사정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금융당국이 한진해운 파산 당시와 같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우조선 구조조정은 채권단을 살리기 위해 진행된 것이다. 2년 전에 이미 대우조선을 법정관리에 넣고 책임자를 처벌했어야 맞다”며 “대우조선으로서는 당장 단가가 낮은 악성 물량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가 특별조사단을 만들어서 시시비비를 밝힌 뒤 구조조정을 다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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