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세론에도 洪이 운을 뗀 배경 곱씹어야

“한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하는 것과 흡사하다. 보수는 위쪽에서, 진보는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는 죽을힘을 다해도 골 넣기가 힘들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론입니다. 이 ‘기울어진~’론은 진보좌파에서 연원합니다. 정치 지형·환경이 자신들에게 매우 불리하므로 매번 불공평 게임을 치러야 한다는 푸념이지요.

 

2010년 진보좌파 논객 유시민은 “민주계열 정당은 축구에 비유하면 0대3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는데 다 같은 맥락의 얘깁니다. 이는 정치사적으로도 증명됩니다. 진보좌파 정당이 원내 제1당이 된 것은 2004년 17대 총선이 유일하니까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몰아쳤던 바로 그 때입니다. 물론 얼마 못 갔고, 김대중(DJ)·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좌파 정권은 10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폐족(廢族) 얘기가 공공연할 정도였으니까요. 

 

2대에 걸친 보수우파 정권 아래선 명맥 잇기에 급급했습니다. 급기야 2016년 20대 총선에선 민주·국민의당 두 갈래로 찢기면서 최악의 위기에 몰렸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 기적의 연출과 주연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이었지요. 방약무인한 여권에 철퇴가 가해졌던 것입니다.

 

제3당 의석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반쪽 야당 민주당이 제1당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리곤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과 위선 행각이 까발려지며 새누리당은 찢겨졌고, 대통령 탄핵·파면에 이른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나라의 뿌리를 흔들리게 했고 보수우파를 괴멸상태에 다다르게 했습니다. 이후 운동장은 정반대로 확실하게 기울었습니다. ‘신(新) 기울어진 운동장’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대선이 40여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말까지 대선 후보자 선호도에서 선두를 달리고, 또 ‘박근혜 망령’에서 비켜날 수 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사라진 지금은 민주당의 독무대입니다. 지지율 30%대를 훌쩍 넘는 문재인 전 대표를 포함,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표를 합치면 60%를 넘어 ‘반 민주당’ 후보군을 압도합니다. 그 중 낫다는 국민의당 안철수(예비)후보가 10%대를 턱걸이 할 정도이고 나머지는 2~3%의 조무래기들입니다. 

 

얼마 전까지 여당이던 한국당과 바른당 당경선 소식은 과거 군소잡당 그것처럼 취급됩니다. 뉴스 가치가 없다는 언론사의 판단 때문이고 실상이 그러하니 섭섭하다 나무랄 처지도 못됩니다. 그러니까 차기 대통령이 누구일지는 몰라도 민주당 출신으로 보는 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여론조사에 ‘장난’이 다소간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입니다. 진보좌파가 위쪽에 확실하게 자리한 ‘신(新)기울어진~’에서 벚꽃대선이 치러지니까요.


이 ‘新 기울어진~’에 홍석현 중앙일보·jtbc회장이 등장했습니다. 아직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회장 사퇴의 변은 출마를 강력히 암시합니다. 여야 정치권도 신경을 곧추세우고 추이를 지켜보는 중입니다. 외모·학력·경륜·재력 등 다들 부러워할 요소를 두루 갖춘 ‘대물’이 나타났으니까요. 

 

그가 지닌 요소들이 여러 사람의 질시를 유발하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니 그럴법합니다. 한국 최고 전문가그룹이 그를 자문,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가 개조를 지향하는 ‘리셋 코리아’ 면면들은 가희 최고입니다. 그가 대선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으나 반(反)패권주의 기치를 내걸 것으로 정치권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反패권은 ‘反文(문재인)’과 통할 겁니다.


보수 원로를 비롯한 주위의 강력한 권고가 있다고 하지만 그가 대선가도에서 본격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을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원체 시간이 촉박해 아닐 소지도 다분합니다. 때문에 그의 행보 평가는 이른데, 그러나 그가 출마를 숙고했다는 사실만도 시사하는 바 적잖습니다. 대세가 민주당으로 기울어 있고, 대선이 불과 40일 앞으로 임박한 마당에서 출마를 저울질 했다는 자체가 의미심장합니다. 여느 뜨내기 후보와 다른, 상황을 족히 알만 한 그가 왜 무모로 읽힐 수 있는 시도를 했느냐는 것이지요.


이 답을 알기 위해선 그의 속내 짐작보다는 민주당, 특히 선두의 ‘문재인 후보’ 주변을 살피는 게 나을 듯합니다. ‘당선되면 북한부터 찾아 가겠다’ ‘공무원 정치 허용’ 등 그가 내거는 공약을 위태롭게 보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선거 때면 흔히 있는 ‘표퓰리즘’ 정도가 아니라 불법·위헌 약속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에서 불안을 느끼는 탓입니다. 가뜩이나 심각한 안보·경제 위기를 가속화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국민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도 주요한 이유지요. 사실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싸고 촉발된 미중 대립과 북한 김정은의 도발·도박 우려 등이 ‘新기울어진~’에 일대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것들이 홍 전 회장을 대선 판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면 ‘문 후보’를 포함한 민주당은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차기 정권은 민주당 몫’이라는 데 많은 이가 공감합니다. 과거와 비교가 안 되는 ‘운동장 기울기’도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일각에서 여전히 ‘결국은 51대 49 게임’이란 전망 아닌 전망이 나오는 이유를 곱씹어야 합니다. 당장의 이해에 급급해 정신 못 차리면 집권해봤자 별무소용이고 나라도 불행하게 됩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