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침체 장기화·미 법인세 인하 움직임에 법인세 인상론 동력 잃을 수도

조기대선을 50일 남짓 남겨둔 가운데 법인세 인상 문제가 선거 막판까지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내수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의 실적부진이 정부의 법인세 수입에도 영향을 미치다보니 법인세 인상을 놓고 야권 대선주자들간에도 이견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기업에 대해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세제혜택 확대를 시사하면서 일각에서는 국내 법인세 인상 논쟁이 원점에서 재검토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지난 2008년 기존 25%에서 22%까지 인하됐던 법인세 최고세율은 현재까지 그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부자감세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그간 정부의 법인세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전순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에서만 줄어든 법인세수는 총 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야권에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복지재정확대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자증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안이 지난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인세 인상에 대한 야권의 압박도 날로 거세졌다. 더욱이 대통령을 탄핵까지 이르게 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기업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인세 인상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조기대선이 확정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유력 야권주자들 사이에서 법인세 인상에 대한 방법론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 선거 막판까지 쟁점화 될 전망이다. 먼저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재 22%인 법인세율을 25% 높이고 실효세율도 함께 인상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는 반대하면서 실효세율을 인상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안 지사와 같은 입장이다. 안철수 의원실 관계자는 “실효세율이 누진원칙대로 정비하지 않는 상태에서 명목세율을 높이면 여전히 모순구조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효세율은 기업들이 벌어들인 소득에서 실제 부담하는 세금을 비율로 나타낸 수치다. 일부 전문가들은 법인세 명목세율이 경쟁국보다 높으면 자본유출은 물론 투자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현재 세율을 경쟁적으로 인하하는 조세경쟁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들 대선주자 3인의 법인세 공약은 주변 경쟁국과 법인세 조세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세수입 측면에서 실속은 차리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반면 이재명 성남시장은 현재의 법인세율을 3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이 시장의 대선 경제공약은 ‘기‧승‧전‧법인세 증세’라고 할 만큼 법인세에 있어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미국(35%), 독일(30%) 등 선진국 수준에 근접한 인상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 시장은 17일 열린 민주당 대선주자 합동토론회에서 “550억원 이상 버는 440개 기업들이 대상”이라며 세율인상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내수침체가 장기화되고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이 법인세 인하카드를 꺼내들면서 야권 대선주자들의 법인세 인상론이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9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올해 10대그룹 상장사 5곳 중 2곳 이상은 실적 부진으로 법인세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대그룹 상장사 중 대한항공, 삼성SDI, 삼성중공업 등 14개사는 적자로 법인세를 아예 내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실제 법인세 최고세율을 15%까지 인하할 경우 미국으로 자본의 쏠림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결국 법인세율을 인하하려는 국가간 조세경쟁은 심화할 것”이라며 미국의 법인세 인하가 국내 경제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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