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SM상선, 한진해운 파산 후 안개 속 구도…‘협력’ vs ‘노선’ 전략

지난해 9월 한진해운의 첫 대체선박인 현대상선 현대포워드호가 부산항 신항 PNIT터미널에 접안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세계 해운시장 13위 업체만의 생존 노하우가 있다. 현대상선이 유일한 보루다.” (국립대 조선학과 K교수)
“장기적으로 돈이 되는 미주노선을 인수한 SM상선이 현대상선을 꺾을 것이다.” (시중은행 한 해외투자전문가)

역사 뒤안길로 한진해운이 사라진 가운데, 국내 해운산업을 이끌 차세대 주자에 대한 업계 전망이 갈리고 있다. 현대상선(HMM)은 세계최대 해운동맹인 2M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동서항로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SM그룹은 한진해운의 미주노선과 영업부문 등을 인수하고 SM상선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해운업 고삐를 죄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해운사 모두 과거 한진해운 규모의 ‘매머드급’ 선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한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뒤 우리 정부 및 해운사에 대한 해외 화주들의 ​신뢰가 바닥을 친 상황이어서 두 해운사 모두 성장 아닌 생존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현대상선 2M·근해선사와 협력관계 구축…‘버티기용’이란 비판도

한진해운 파산 이후 현대상선은 협력관계 구축에 몰두하고 있다. 당장 해운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선박 매입을 포함한 ‘몸집 불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보니 해운업 핵심으로 꼽히는 ‘바닷길’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16일 세계최대 해운동맹인 2M(머스크·MSC)과 전략적 협력을 위한 얼라이언스 본계약 서명식을 개최했다. 이로써 현대상선은 2M과 선복(선박의 화물 적재공간) 교환, 선박 매입을 하는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게 됐다.

현대상선은 오는 4월부터 2M 동맹 선사들이 운영하는 선박의 빈 공간을 나눠 쓰거나 구매해 쓰는 방식으로 협력하게 된다. 이번 2M과의 계약은 3년이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이번 해운동맹으로 3사 모두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현대상선은 2M의 경쟁력 있는 네트워크와 초대형 선박 활용을 통해 보다 다양한 서비스와 안정적인 수익성 개선 기반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1월 근해선사인 흥아해운, 장금상선과 함께 전략적 협력 ‘HMM + K2 컨소시엄’도 결성했다. 원양선사와 근해선사간 전략적 협력체를 구성한 사례는 대한민국 해운 역사상 전무했다. 이번 협력으로 현대상선은 근해 지선망을 확충할 수 있게 됐다. 협력 구간은 일본, 중국 및 동·서·남아시아 전체를 포괄한다. 계약기간은 2년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반쪽 짜리 협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긴밀한 수준의 해운동맹은 선사끼리 비용과 수익까지 나누지만 현대상선이 맺은 선복 교환, 선박 매입은 가장 낮은 단계의 협력으로 평가받는 탓이다. 당초 현대상선은 2M과 이보다 높은 동맹 수준인 선박공유협정(VSA)을 맺기 위해 협상을 벌여 왔다. 근해선사와의 협력 역시 원양수익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현대상선이 2M에 완전히 가입된 것이 아니기에 얼라이언스를 통해 누릴 수 있는 효과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다. 껍데기 동맹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며 “성장에 방점이 찍혔다기 보다는 일단 버텨내자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 한진해운 핵심자산 인수한 SM상선…미주노선 ‘가치 회복’ 숙제

현대상선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흘러나오면서 SM상선이 주목받고 있다. SM상선은 한진해운 파산과 동시에 탄생한 ‘새내기 선사’다. 영업력이나 인지도 면에서 현대상선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알짜 자산’을 대거 인수한 덕에 성장 동력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월 한진해운의 미주노선과 영업부문 등을 인수한 삼라마이더스(SM)그룹은 SM상선을 설립하고 대표이사에 김칠봉 대한상선 사장을 임명했다. 앞서 SM상선은 한진해운이 운영하던 경인터미널 3개 선석(한척의 선박을 계류시키는 접안장소​), 광양터미널 4개 선석을 인수했다.


SM상선은 한진해운 직원 200여명도 채용했다. 컨테이너선 운용과 해외 영업을 담당했던 ‘해운통’ 인력을 대거 흡수했다. 한진해운이 오랜 기간 쌓아온 경영노하우와 화주 네트워크를 상당 부문 인수한 셈이다.

SM상선은 지난달 한국선주협회에도 공식 가입했다. 이로써 SM상선은 운영 중 애로사항 및 건의사항을 협회 차원에서 정부에 건의할 수 있게 됐다. 국제 분쟁에 휘말릴 시 국내 해운 네트워크는 SM상선의 ‘방패’ 역할을 하게 된다.

업계에서 SM상선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주노선의 수익성 때문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미주노선은 매년 3~4조원씩 매출을 올렸다. 한진해운의 ‘노다지’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 영업망이 붕괴된 상태라, SM상선이 과거 미주노선의 수익성을 얼마만큼 회복시킬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한진해운 전직 임원은 “한진해운은 미주노선을 먹고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미주노선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은 매우 컸다”며 “물론 한진해운이 파산하며 미주노선의 가치가 예전보다 절하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주노선이 언제든 부활의 디딤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상선 보다) 화주 영업에선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현대·SM상선 생존이 급선무…정부차원 유동성 지원 이뤄져야
 

현대상선과 SM상선 모두 현재로서는 경쟁 아닌 생존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회사 모두 유불리를 따지기에는 현재 처한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한국 해운선사에 대한 불신이 커져있다. “언제 또 파산할지 모르는 회사에는 일을 맡길 수 없다는 비판이 해외 화주들로부터 쏟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발주량 둔화, 해상운임 하락 등 해운시황 침체로 글로벌 해운 치킨게임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현대상선과 SM상선 모두 한진해운급의 선사로 성장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즉, 두 선사 모두 5년 뒤에도 살아남아 있다면 그제서야 성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석용 해운거래정보센터 책임연구원은 “현대상선은 해상 운임이 올라도 자사선(회사 보유 선박) 원가가 높다. 결국 업황이 나아져도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결국 한국 해운사가 업황 회복에도 제 역할을 해내려면 영업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당장은 불황을 버텨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유동성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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