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대우조선 추가지원 임박소식에 해운업계 "구조조정 대원칙, 대우조선에만 예외인가" 반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신규지원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해운업계에서는 한진해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살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 사진=뉴스1

“항아리 깨뜨린 첫째는 괜찮다고 달래놓고 화분 깨뜨린 둘째는 내쫓은 꼴이다.”


14일 부산 항만업계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지원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융권이 국내 해양산업 ‘첫째’로 불리는 대우조선에는 막대한 혈세(血稅)로 자금난을 틀어막고는, 대우조선보다 부실규모가 작았던 ‘둘째’ 한진해운에는 자금지원을 거부한 행태가 형평성에 어긋났다고 비판했다.

올해 1조원대의 유동성 위기에 놓일 것으로 전망되는 대우조선에 정부가 추가적인 신규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오자, 해운업계에서는 “정부가 조선·해운업에 대한 일관된 지원정책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한진그룹의 추가 자구안 제출 이후 부족자금 1400억원을 이유로 신규 자금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 한진해운 파산을 방치한 셈이다. 그러나 정작 부실규모가 눈 더미처럼 불어난 대우조선에는 2015년 4조2000억원을 수혈한 뒤 추가적인 지원까지 고려하자, 한진해운 파산 이후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는 항만·물류업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 대우조선 코앞에 닥친 유동성 위기에 산업은행도 ‘비상’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13일 오후 이동걸 회장 주재로 대우조선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유동성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정용석 구조조정부문 부행장과 대우조선을 담당하는 기업구조조정1실 관계자들이 참여해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지원 여부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 한 관계자는 “정례적인 회의는 아니었다. 기업 구조조정 이슈가 생각보다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 회장이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불러들인 것으로 안다”며 “대우조선 유동성 대응방안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의견이 구성원 간 갈리고 있고 (탄핵 정국 등) 사회·정치 이슈까지 산적해 구체적인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조선업계에서는 대우조선의 ‘부실 폭탄’이 올해 터질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은 심각하다. 대우조선은 오는 4월 4400억원을 시작으로 7월 3000억원, 11월 2000억원, 2018년 3월 3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내년 말까지 채무이행에 필요한 자금 규모만 1조49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조선 업황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데 있다. 대우조선 지난해 신규수주는 15억 달러에 그쳤다. 당초 정부가 전망했던 62억 달러에 4분의 1 수준이다. 올해 수주난은 더 깊어졌다. 유럽지역 선사와 17만3400㎥ 규모의 LNG 운반선 2척을 수주한 게 전부다. 이달 신규 수주에 성공한다 해도, 헤비테일(선박을 인도할 때 건조대금 대부분을 받는 것) 계약 방식 탓에 당장 유동성 가뭄을 해갈할 수 없다.

◇ “한진해운 탓에 대우조선만은 살릴 것”…추가지원설 ‘솔솔’

금융당국 역시 대우조선의 유동성 위기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경제 위기 극복을 연일 외치고 있는 정부로서는 대우조선의 파산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한진해운 파산 이후 ‘바다 경기’가 악화된 상황인지라 대우조선은 반드시 살려낼 것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지난달 17일 법원이 파산 선고를 내리면서 국내 해운업계 제1위 국적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다.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총괄해온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한진그룹의 추가 자구안 제출 이후 부족자금 1400억원의 간극을 이유로 신규 자금지원 중단 결정을 내린 탓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1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 금융권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채권단은 채무재조정 등을 통한 정상화 가능성, 회사 정상화에 대한 대주주의 의지, 해운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며 "구조조정의 원칙을 지켰다"고 자평했다. 즉,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혈세를 투입해 기업을 살리는 것은 비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설명이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지난해 부산항의 물동량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작년 우리나라의 해상운송 관련 국제수지도 적자를 냈다. 14일 한국은행 국제수지의 서비스무역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해상운송수지는 5억3060만 달러(약 6000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한은이 2006년부터 관련 통계를 낸 후 연간 기준으로 첫 적자다.

◇ 대우조선 지원의 ‘반의 반’이라도 해줬다면

항만·물류업계에서는 “정부와 금융권이 대우조선 지원에 나선다면 한진해운 파산에 대한 책임을 더 막중히 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해운업이 국가에 미치는 파급력은 등한시 한 채, 대우조선에는 경제 파급력을 이유로 지원에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부산항만 A물류업체에서 일하는 박아무개씨는 “한진해운 파산 당시 책임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했던 정부다. 그런데 대우조선에는 끌려다니는 모습”이라며 “대우조선을 죽이라는 말이 아니다. 조 단위의 자금을 투입해가며 대우조선을 살려낼 이유와 2000억원도 안 되는 돈 탓에 무너진 한진해운을 살려낼 이유가 같았다는 데 아쉬움이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대우조선에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정부와 금융권이 대우조선에 혈세를 투입하기 위해서는 국민 공감대가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상운임이 오르는 등 물류난이 심화됐고, 실직자가 수천 명 가까이 발생한 상황에서 ‘대우조선은 되고 한진해운은 안 됐던’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한국 해운업이 성장했던 이유는 냉전시대에 미국과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런 (성장)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화가 진행된 후 해운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져 제2의 한진해운이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우조선 채권단 관계자는 “당장 대우조선에 돈을 투입한다고 해서 기업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자금지원을 끊는다면 대우조선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며 “결국은 추가 자금지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지원이 논의되다보니 채권단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한진해운 파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지원 원칙 자체가 뚜렷하지 않다보니 대우조선에만 자금이 지원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결과론이지만 한진해운을 살려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랬다면 대우조선에 대한 신규지원 역시 타당성이 확보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