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배수진에도 분사 통과…"파업한다고 회사 회생하나" 노조원 간 의견대립

“가족이 묻습디다. 투쟁 구호대로 되면 현대중공업 살아 나냐고요.”

2일 12년째 현대중공업에 근무하고 있다는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노조원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집행부가 총파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당장 가족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데 노조원들에게 파업 참여를 독려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현대중공업이 분사를 결정한 가운데 노조는 총파업과 법적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당장 임금교섭이 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가 다시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자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행부를 향한 반발심이 커지고 있어, 노조가 노·노(勞) 결속과 노사 협상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 노조 총파업 배수진에도 결국 쪼개진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2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사업분할을 최종 확정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1일부터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사업부가 각각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 현대건설기계, 현대로보틱스 등 독립법인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는 ‘주총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회사가 분사를 강행하는 이유는 회사 회생이 아닌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노조는 분사가 시발점이 돼 인력 구조조정이 가속화된다면 올해 조선 3사 직영인력 2만 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노조는 분사를 임단협 주요 화두로 올리면서 사측을 압박해왔다. 사측은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분사와 기본급 반납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간 전 임직원이 기본급의 20%를 반납하고 고정연장수당 폐지에 동의한다면 임금 조정 10만원, 호봉승급분 2만3000원을 포함해 12만3000원을 인상하겠다는 게 사측 제안이었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23일과 24일 총파업을 진행하며 맞섰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부분파업이 아닌 전면 파업을 진행하기는 23년 만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사실상 배수진을 치며 사측을 압박한 것이다. 노조가 24시간 작업을 거부한다는 것은 선박 적시 인도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수주난 심화로 고민하고 있는 경영진에게 노조가 던질 수 있는 ‘최후의 카드’였던 셈이다.

그러나 결국 사측이 임시 주총을 통해 분사를 결정하면서, 노조의 파업카드는 실패로 돌아갔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회사 ISS가 분사에 긍정적인 견해를 밝히면서 노조의 분사거부 주장도 힘을 잃었다. ISS는 “분사를 통해 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 수 있고, 차입금 축소 등 자구 계획 실천으로 기업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며 분사에 찬성했다.

◇ “회사부터 살리자” 對 “그러다 우리가 죽어”…갈리는 노조 의견 

2일 현대중공업 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파업 관련 게시글 아래 댓글. 분사와 파업을 둔 노조원 간 의견 대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사진=현대중공업 노조 홈페이지
사업분할로 현대중공업 인력 2만3000여명 중 20%에 이르는 최대 5000여명이 분사되는 회사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들의 고용은 그대로 존속된다. 다만 소속은 현대중공업에서 각 분할회사로 옮겨진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분할 이후에도 노조가 우려하는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2일 담화문을 통해 "사업분할과 관련해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접고 회사를 살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강 사장은 "이번에 분할되는 법인들은 그동안 조선업에 가려져 기술과 품질 향상을 위한 기본적인 투자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사업분할로 적기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재상장이 이뤄지면 시장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 및 근로조건에 대해 "회사가 공시한 분활계획서에도 명시돼 있듯 고용 및 근로조건은 100% 그대로 유지된다"며 "사업분할 후 각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내고 경쟁력이 높아지면 고용 안전성도 당연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는 강 사장의 담화 이후에도 “경영효율화를 추구하는 경영진이다. (고용 유지 보장은) 믿을 수 없다”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역경제 타격을 우려하고 있는 울산지자체,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법적 대응 및 연대 시위 등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노조 차원의 총파업 카드 역시 고려 대상이다.

문제는 노조 내 결속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임단협이 해를 넘기면서 노조 내부에서 집행부를 향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투쟁에 참여하던 노조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계가 사측 주장에 힘을 실어주자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논리가 아닌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24일에도 울산공장에서 진행한 8시간 전면파업에 참가자 조합원 수는 700여명(회사 추산)에 그쳤다. 전체 조합원(1만3000여명)의 약 5%다. 노조 측은 참가자 수를 1500여명으로 추산했지만, 이 역시 전체 조합원 10명 중 1명이 참여한 수준이다.

고민 끝에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현대중공업 노조원 김아무개(33)씨는 “먹고 살자고 하는 게 파업인데, 어느 순간 파업구호에 정치얘기가 섞이는 걸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며 “회사를 믿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집행부가 내거는 구호가 회사를 살려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가시지 않는다. 파업 동기가 명확해야 같이 분노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속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집행부에게 모든 탓을 돌릴 수 없다. 회사에서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돈으로 취급하고 있다. 줄일 대상으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노동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파업이다. 임시 주총 당시에도 사측이 고용한 용역 탓에 부상자가 속출해 집행간부 3명이 갈비뼈와 팔목 등의 부상을 당했다. 앞으로도 사측 계획대로 순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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