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면발은 장수의 상징

 

 

홍명 간짜장
짜장면은 내게 좋은 추억이다. 중학교 졸업식, ‘야자’ 빼먹고 간 당구장, 첫 이사…. 아련한 기억의 저편엔 짜장면이 있었다. 모든 짜장면에 관대한 편이지만 요즘 좀 까다로워졌다. 홍명의 간짜장 때문이다. 한번 맛보면 다른 짜장은 시시해진다.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은 궁극의
‘간’이라고나 할까?

 

양념과 면의 합은 또 얼마나 좋은지 쓱쓱 몇 번 비비기만 해도 어느새 하나가 된다. 웍에 튀긴 듯 내는 달걀 프라이는 덤. 탕수육이 거들어주지 않아도 입안은 충분히 잔칫집이 된다.

- EDITOR 이광훈

 

 

사발 닭국수
아주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집은 우리 집과 아주 가까웠다. 덕분에 봄이면 맛있는 봄동무침을 먹었고 가을이면 깨, 콩, 설탕이 넘치도록 든 송편을 먹었다. 맛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사발의 닭국수를 들면 두툼한 할머니 손이 생각난다. 할머니도 닭국수를 만들어주실 때면 뭉툭한 손끝으로 뽀얀 닭고기를 좌악좌악 찢어주셨다. 간이 슴슴하고 맛이 상냥한 것 또한 닮았다. 홍대점으로 가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 GUEST EDITOR 전여울

 

 

 

 

  

오뚜기 컵누들 얌꿍 쌀국수
세계 3대 수프로 꼽히는 톰얌쿵을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니. 오뚜기에게 공로상이라도 주고 싶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게다가 시큼하기까지 해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지만 한번 빠지면 출구가 없다. ‘이 깊고도 오묘한 국물이 인스턴트 액상 스프로 표현될까?’ 내심 의심했지만 톰얌쿵 마니아인 나는 단숨에 컵의 바닥을 보고 말았다. 

 

면의 식감도 부드럽고, 말린 새우 건더기를 집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벼운 칼로리에 출근 전 아침 식사 대용으로 애용하는 중. 덕분에 아침밥을 차려주던 엄마의 일도 줄었으니 진짜 상 받을 만하지 않나?

- EDITOR 김장군

 

 

그릴밥상 라면샐러드
샐러드 우동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알던 잘하는 집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조용해서 자주 가는 그릴밥상에 비슷한 메뉴가 있어서 시켰는데, 오! 유레카! 푸짐한 채소와 마요네즈 소스, 여기에 우동보다 가늘고 탱탱한 라면 면발이 어우러지니 상큼하고 신선했다. 

 

 

기분이 처지거나 슬플 때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은 맛이다. ‘샐러드’지만 양이 푸짐해서 먹다 보면 어느새 배가 불룩해진다.
- EDITOR 안주현

 

 

 

 

 

 

멘야 하노루 마제멘
언젠가 격하게 출출해진 야심한 시각, 멘야 하노루의 본점과 다름없는 단골가게 미자카야에서 마제멘을 처음 먹었다. 적당히 통통한 생면에 고소한 마요네즈와 달걀노른자의 궁합은 입안에서 ‘후루룩’ 미끄러지며 끝도 없이 들어간다. 적어도 나한테는 이게 원조 마제멘이다. 

 

 

한동안 미자카야에 마제멘이 끊겨 굉장히 서운했었는데, 아예 대놓고 면 음식점을 새로 오픈했다. 메뉴에 하이볼이 없다니 아쉽지만, 원래 동대문은 잘 가지도 않는 동네지만, 마제멘 때문에 갈 수밖에.
- EDITOR 최태경

 

 

 

 

가람국시 콩국수
전주가 고향이라고 하면 다들 맛집을 물어본다. 취향도 묻지 않고 추천하는 ‘진미집’은 콩국수와 냉메밀을 잘한다. 두유보다 달게 먹는 것이 전라도식 콩국수다. 단 음식과는 상극이지만 콩국수만큼은 예외다. 여기에 입맛이 길들여져서 그런지 다른 어떤 집의 콩국수를 먹어도 맛이 영 맹맹하다. 

 

 

‘가람국시’에서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콩국수를 주문했다. 다른 메뉴들처럼 정갈하고 밀도 있는 맛이다. 하지만 슴슴하게 먹는 서울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릇을 받으면 다른 고명 빼고 설탕을 딱 반 국자 넣는다.
- GUEST EDITOR 이상

 

 

 

호무랑 자루소바
소바는 먹고 돌아서면 생각난다. 쓰유에 담갔다 마시듯이 후루룩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메밀 향이 푹푹 나고, 그렇게 한 사발 배불리 먹고 나면 개운하고 깔끔하기만 하다. 소바 생각이 나면 호무랑에 간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듯 쾌청하고 적막한 호무랑에서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하는 건 언제나 자루소바. 

 

 

1백 년 역사의 소바 명가인 일본 사라시나 호리이와 제휴한 호무랑은 온전히 손으로 치대 만든 소바를 낸다. 낫토소바나 청어소바도 유명하지만, 사라시나 호리이의 메밀 면 노하우를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자루소바가 나에겐 제일이다.
- EDITOR 이경진

 

 

꿍탈레 팟타이
나도 태국의 진한 맛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하지만 미취학 아동 수준의 입맛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다. 그래서 매번
‘극고수파(극단적으로 고수를 넣어 먹는 무리들)’와 충돌을 피할 길이 없었다. 나처럼 특유의 진한 맛을 두려워하는 이들과 정통 태국파가 단체 모임을 가질 만한 곳을 찾아냈다. 

 

 

가로수길 ‘꿍탈레’는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 없이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태국 요리를 낸다. 태국어로 ‘꿍’은 새우, ‘탈레’는 바다를 뜻한다. 고소한 팟타이는 음식 취향의 분단선을 넘은 대화합을 가능케 한다.
- EDITOR 서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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