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요인만으로 금리 내렸다고 볼 수 없어…성과연봉제는 협업 문화에 악영향"

 

김영근 한국은행 노조위원장은 28일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신뢰를 강조했다. / 사진=권태현 기자

한국은행 노조위원장은 무엇보다 ‘신뢰’를 강조했다. "신뢰야 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게 그의 신조다. 김 위원장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있어서도 직원들 간의 신뢰가 와해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냈다. 한은을 지탱했던 ‘직원간 협력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는 한은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한은이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겼다"는 비판에 대해 "계속된 금리인하도 통화정책 수단의 여지를 좁혔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했지만 한국은행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어떻게 보나.

우선 한국은행 차원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했겠지만, 제반 여건을 볼 때 가능한 얘기인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저출산 고령화가 가장 큰 문제고 경기 침체는 가시화되고 있다. 소비·지출·정부 투자 등이 모두 활발해야 되는데 지금으로선 개선될 기미가 없다. 이렇게 되면 스태그네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거다. 단기적으로 지난해와 그 전년 원자재 가격이 낮았기 때문에, 이게 회복되면 물가상승 요인이 될 텐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 없지 않다고 본다. 경제를 위협하는 리스크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발 금리인상,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한은의 고심이 깊어졌다. 일각에선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내려야 한 다는 의견도 있고, 내외금리차로인한 자본 유출 때문에 따라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은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봤을 테지만, 미 연준이 금리를 올렸을 때 국내 유동성이 빠져나가고 국내 투자자금이 해외로 쏠릴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금리를 내린다는 건 어려워진 시나리오지 않나. 미국이 올리면 우리도 올릴 텐데 금리를 올렸을 때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치느냐가 큰 변수다. 가계부채가 제일 크지 않을까 싶다.

가계가 대출을 받을 때 감당할 수 있는 이자 수준까지 받을 것이다. 만약 금리를 인상한다면 대출을 받아놓은 상태에서 이자부담이 커질 것이고, 이자율 상승만큼 소비를 줄이거나 다른 분야의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계부채 문제가 터지게 되는 거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다.

한은이 언제쯤 금리를 인상(또는 조정)할 것이라고 보나.

금리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금통위의 몫이고, 정보력이나 의사결정력 측면에서 그분들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를 살피면서 판단을 하겠지만, 미국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먼저 올리진 않을 테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했을 때 국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은에서 금리를 쉽게 올리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한다곤 하지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청년 고용 문제, 일자리 정책 아닌가. 이를 해결하려면 금리 인상 카드를 쉽게 꺼내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일각에서 “한은이 가계부채 문제에 손을 뗐다”는 목소리도 있던데.

 

가계부채가 금융불안이나 사회문제로 확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책당국은 ‘누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책임을 논하기 전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금융정책 당국이라는 측면에서 한은이 가계부채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 금융위원회, 한은,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하는 협의 기구가 있는데, 여기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방향을 찾아가야지 “한은이 가계부채 문제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한은의 주요 책무중 하나가 금융안정이다. 금융안정 차원에서도 가계부채 문제는 당연히 고려돼야 한다.

최근에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게 한국은행 역할론이다. 전통적인 금리결정만으로 금융안정을 달성하긴 어렵다. 중앙은행이 대안을 모색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한국경제를 이끌어나가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여기서 한은이 뒷짐을 진다면, 우리 역할을 축소시키거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한은이 얼마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지난 국정감사 당시 지적을 많이 받았지만 가계부채 증가에 한은 영향이 컸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DTI, LTV를 완화했고 한은이 금리를 인하했다. 한은은 순전히 경기요인만으로 금리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시기적으로 경기만으로 금리를 내렸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시장이 그렇게 평가한다.

김 위원장은 한은이 유달리 가계부채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는 쪽을 지지했다고 지적했다. / 사진=권태현 기자

기존 스탠스(입장)가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갔는데, 유달리 가계부채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통화정책 수단의 여지가 좁아졌고, 나중에 이슈가 터졌을 때 한은 책임론을 들고 나올 수있는 상황이다.

한은의 성과연봉제 도입. 어디까지 왔나.

사측은 성과연봉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려 한다. 한은 직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의 요구도 있었다. 반면 한은 직원들은 대부분 반대하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이라는 조직은 성과측정이 어렵다. 부서마다 업무가 다르고 일반 은행처럼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는 건 부서장이나 총재의 전횡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흔히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성과연봉제의 문제들은 △단기성과 치중 △줄서기 △치열한 부서경쟁을 들 수 있다. 이럴 경우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던 장점인 협업이나 튜터링 문화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성과급제를 조금 확대했던 경험이 있다. 이 과정에서도 조직 문화가 상당히 많이 개인주의적으로 흘렀다. 이번에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게 되면 조직문화가 와해될 수 있다. 성과연봉제를 노조가 막아달라는 게 조합원들의 목소리다.

현재 사측과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논의 하고 있나.

1차적으로 기재부가 “성과연봉제를 지난 2016년 말까지 도입하라. 그렇지 않으면 2017년 예산을 동결하거나 삭감 하겠다”고 했다. 지난해엔 도입하지 않았다. 올해는 노사가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최근 한은 내부에서 이런 소문이 나돈다. “기재부가 2017년 예산을 배정했는데 상반기까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2.5% 임금을 인상해주고, 연말까지 하면 2%를 인상해준다. 도입하지 않으면 동결이다”라는 얘기다. 이건 노조를 압박하는 거다.

직원들에게 설문을 해보니 “임금 동결을 해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말라”는 게 다수 의견이다.

한은 내부에도 라인이 있나.

라인 존재한다는 비판이 있다. 한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봐도 ‘인사나 정책라인’혹은 ‘특정 동호회 모임’이 승진 등에서 우대된다는 말들이 많다. 조직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이주열 총재가 2014년부터 재임했는데, 전임 총재와 비교한다면 어떤가.

김중수 전 총재가 발탁인사 등으로 내부 분위기를 흐렸다는 얘기가 있어 이 총재가 오실 때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 총재 부임 후에도 특정 대학 출신을 좋은 부서, 좋은 보직에 많이 배치하는 식의 인사는 여전하다는 비판이 있다. 인사문제로 봤을 때 김중수 전 총재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직원들의 정서다. 이뿐만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추궁 식으로 접근을 한다는 등의 모습에서 직원들이 기대했던 선배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다. 노사가 자주 만나 조직의 발전 방향을 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이 총재는 만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노조위원장이 된 이유와 지금 재임기간에 꼭 이루고 싶은 점이 있다면.

노조 위상을 정상화시키고 싶다. 노동조합이 과거 집행부 공백 등을 거치며 전통이나 관행이 많이 무너졌다. 재임 기간 동안 노조에 부정적인 조합원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돌리는 것도 상당히 어렵고, 사측 역시 노조를 무력하게 보는 것 같다.

차기 집행부에 누가 오더라도 사측이 존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은행 노조는 3급 이하의 하위 직급이 노조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고위 직급에 올라갈 텐데, 노조라고 표현하기보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의견’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한다. 과거에는 ‘한은 가족’이라 부르며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관행이 많이 무너진 것 같다. 노조 위상을 바로 세우는 데 3년이 부족하다면 연임을 통해서라도 정상화 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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