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성격 강해진 현실 직시해야 …고갈 가능성 덮을 때 지나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금제도연구실장이 최근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65세에서 67세로 다시 늦출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연구실장은 현재 59세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 상한도 65세로 변경해 연금납입 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기했다.

그는 이미 2013년에도 국민연금 지급개시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보고서로 논란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그가 같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공단이나 정부 역시 기금고갈 문제를 언젠가 도마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고갈 가능성은 태생적

국민연금이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세금 아닌 연금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내놓다보니 태생적으로 고갈될 운명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연금과 같은 성격의 미국 공적연금은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에 의한 사회보장세를 재원으로 하며 국세청이 징수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연금공단이 징수하고 지급하는 것과 대조된다. ‘연금’이란 근사한 옷으로 국민을 기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내면을 들여다보면 세금 성격은 더 강하게 보인다.


우선 국민연금은 낸 것보다 더 주는 걸 전제로 출발했다. 국민 저항을 피하기 위해 처음에 퇴직 전 평균 소득의 70%까지 지급키로 한 것이다. 적게 받아 많이 주려다보니 자연히 피라미드 사기의 성격을 띠게 됐다. 먼저 받는 사람들은 좋지만 부담은 고스란히 후손들이 져야 한다.

기금 고갈 이슈가 불거지자 정부와 연금공단은 지급액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가입자를 늘리는 편법을 개발했다. 주부들을 가입시키고, 청년들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그렇게 기금을 긁어모았지만 그에 따라 미래에 지급할 연금액도 커지게 됐다.

결국 부도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정부는 2014년 법을 바꿔 정부의 지급 의무를 은유적으로 달아 놨다.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한다는 조항과 ‘급여 수준과 연금보험료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한다고 법에 적은 것이다.

◇세금 성격 갈수록 높아져

그런데도 정치권은 당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뒤섞어 국민연금의 세금 성격을 더 강화했다. 당시 이에 반대 견해를 제기한 진영 전 복지부장관은 옷을 벗었다.

편법으로 이슈를 잠재웠지만 출산 인구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기금고갈은 시기 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게다가 정치권은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국민연금으로 끌어들여 재정적 성격에다 소득재분배 기능까지 강화했다.

출산 크레디트와 실업 크레디트를 넣어 인구정책과 사회보장 기능까지 담은 것이다. 탈북민에겐 기준보다 훨씬 짧은 기간만 가입해도 연금을 지급키로 했다. 고갈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논란이 일자 이 연구실장은 선진국 제도를 비교해보고 한국도 그에 걸맞게 갈 필요가 있다는 개인적 의견을 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걸 믿을 바보는 없다. 연금개혁의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봐야 한다. 사실 최근 사임한 문형표 전 이사장도 “가입기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하는 게 우선”이라거나 “2018년 4차 국민연금 재정 계산 때는 2060년 이후에도 급격한 기금 고갈 없이 연착륙할 수 있는 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KDI도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 주장

기획재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KDI 쪽에서도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는 의견이 나온 게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근 KDI 포커스를 통해 “고령 근로에 따라 국민연금의 수급시작 연령과 그에 따른 연금액 조정에 대한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실장과 같은 생각이다. 윤 교수는 특히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취약층 연금보험료를 지원하고 가입회피자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국민연금의 세금 성격을 강조한 셈이다.

국민연금은 제도 뿐 아니라 운용 측면에서도 세금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민연금은 10월말 545조8000억원의 운용자산 가운데 52.6%를 국내채권에 넣고 있다, 국내채권으로 운용하는 그 286조3500억원 가운데 135조1600억원이 국채나 통안채다. 국민연금 자금을 정부 재원처럼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10월까지 3%대를 유지했던 국민연금 국내채권 수익률이 11월말 1.6%로 급락했다. 최근 기금고갈 가능성이 부각된 게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채권수익률 급락과 전혀 무관하지 않아 보이다. 그러 인해 전체 운용성과가 저조해질 경우 고갈 논란은 더 빨리 수면 위로 솟아오를 수도 있다.

정부나 국민연금공단 모두 이젠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운용이나 지급에 소요되는 비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하면서 직원 기본급과 성과급을 10%씩 인상하고 주거비 보조 명목으로 대규모 연금재정을 지출하는 게 바람직한지도 따져야 한다.

벌기보다 쓰는 데 집중하는 연금 직시해야


운용보다는 지급에 초점을 맞춘 국민연금 이사회와 기금운용위원회 구성도 이참에 재검토해야 한다. 연금기금이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운용되는지, 그 기금이 국민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대로 투자되는지, 대기업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적절히 배분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노후보장 수단으로 너무 의지하지 않는 것도 좋다. 세금으로 굳어져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구책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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