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4당 찬성에도 만장일치 관행에 발목 잡혀…야권 "대선 공약에 넣어 반드시 관철"

상법개정안이 결국 국회 법사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7일 제1법안소위를 열고 상법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한 여당의원들이 회의장을 퇴장하면서 논의가 무산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양당제 하에서 다수당 독주를 막기 위한 만장일치 관행이 다당제로 전환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앞서 상법 개정안을 논의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 소속 의원 8명 중 박범계·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 등 5명은 상법개정안 주요 항목 다섯가지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대주주 등 의결권 3%로 제한),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 전자투표제, 노동자대표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 항목에 찬성 또는 부분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과 여상규 바른정당 의원은 전자투표제에는 찬성하나 나머지 4개 사항은 입장을 유보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5가지에 모두 반대했다. 김 의원은 지난 9일 여야 4당 원내수석부대표 모임에서 전향적 처리에 합의한 다중대표소송과 전자투표제 도입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법사위 소위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27일 법사위 제1소위에서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하면서 회의가 무산됐다. 법사위는 상법 개정안 중 여야 4당이 합의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의 처리를 시도했지만 여야 사이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던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자사주 인적분할시 의결권 제한 등은 소위에서 안건에도 오르지 못했다.

법사위는 여야 4당이 합의한 다중대표소송제도와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에 대해서만 논의를 진행했다. 다중대표소송제 절충안에 야당 의원들이 합의하면서 처리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권 측에서 박범계 법사위 제1소위 위원장에게 상법 개정안 외 법원 조직법 개정안 등 다른 법안도 안건에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회의가 파행됐다.

법사위 오전 심의가 중단되면서 상법개정안 법안소위는 막을 내렸다. 김진태 의원실 관계자는 “2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는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법안소위에서 상법개정안 항목 5개 중 1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어서 법안 처리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학계 전문가들은 국회 법사위의 만장일치 표결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회가 사실상 다당제로 전환한 후에도 법사위에서 만장일치제를 유지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만장일치는 양당제에서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유지된 관행”이라면서 “상법개정안은 법사위 만장일치 관행에 결함이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2월 국회에서 상법개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대선주자들은 상법개정안을 공약에 포함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 유력 대선주자 캠프에서 경제분과를 담당하는 교수는 2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대선주자들이 구체적인 상법개정안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상법개정안이 처리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이미 상법개정안을 포함한 구체적인 재벌개혁 공약은 준비된 상태”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국회 처리가 무산됐으니 이제 상법개정안은 대선주자 공약으로 본격 등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캠프에서 경제분과를 담당하는 한 교수는 “(이번 상법개정안 처리 무산은) 국민들이 궁극적으로 재벌통제가 필요하다는 역작용을 한다”며 “기득권을 하나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태도는 여당과 재계에게도 결국은 소탐대실”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