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 이야기

금수저, 헬조선, 7포세대, 이태백 등 온갖 신박한 신조어가 등장하는데 웃음은 커녕 묵직한 씁쓸함이 찾아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라본 한국의 촛불 집회 장면은 뜨거웠고 희망적이었지만 동시에 아팠고 답답했다. 연이은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경기 불황으로 불어닥친 극심한 채용 한파는 청춘들을 좌절시킨다. 요즘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유독 이민에 관한 글이 많이 보이고 이민 성공담들은 많은 조회 수를 얻는다. 결국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이 답일까. 

벌써 가족을 떠나 홀로 미국에서 유학한 지 9년이 되어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건너와 혼자 입시를 준비하고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 합격해 힘겹게 졸업했고 마케터로 취업했으며 또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으로서 오르기 힘든 진입 장벽에 수 없이 부딪혀봤기에,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이곳을 도피의 장소로 추천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생 중 보통 이과생에게는 3년, 문과생에게는 1년의 취업 허가증이 주어진다. 이후에도 일하려면 고용주가 정부에게 돈을 주고 취업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추첨을 통해 신청자 30% 미만에게만 비자가 나온다. 돈도 돈이지만, 당첨률도 매년 낮아지고 있어 회사 입장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아닌 이상 외국인을 채용할 이유가 없다. 이에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 갓 졸업한 경력 없는 유학생에게 돌아간다. 수억원을 쏟아부어 대학을 졸업했더니 이제 네 나라로 돌아가란 소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기업들은 갈수록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엔지니어라면 아직은 수요가 많기에 취업이 비교적 수월하지만 문과생이라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많은 문과생이 업무 특성상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지 않고 비자 지원을 잘 해주는 회계법인에 지원한다. 그러나 합격해도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분명 자신에게 열정과 소질이 있는 직업이 있음에도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 회사들로부터 찬밥 신세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미국에 있는 한국 회사들은 더 가관이다. 한국인에게 비자를 지원해주는 대신 연봉을 팍팍 깎거나, 월급을 제때 주지 않거나,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비자 신청 마감일을 코앞에 두고 말 바꾸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한국인 변호사는 안전한 비자보다 제한된 비자를 추천하면서 문과생이면 이 정도로 만족하라고 하더라. 같은 한국인을 돕고 끌어주진 못할망정,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산 표본이 아닌가.

이런 각박한 현실 탓에 유학생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유학생의 메리트가 없어졌지만, 유창한 영어 실력 등이 요구되는 업종에서는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 그렇지만 유학생 아무나 못한다. 돈 먹는 하마다. 1년에 학비 수천만원을 내야한다. 아무리 공부 잘해도 돈 있어야 유학 오고 유학 와도 미국 취업은 바늘구멍이며 한국에서는 조금 메리트가 있을 뿐이다.

 

내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디든 취업이 쉬운 곳이 없다. 그렇지만 집단으로 신세 한탄한다고 내가 딱히 더 힘을 얻는 것도 아니었고 기업들이 일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무기력도 이해하고 무의식중에 내쉬는 한숨이 잦아진 것도 나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철저히 자신을 위해서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며긍정적으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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