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리더십에 영업이익 ‘잭팟’…진에어 추격·후쿠시마 악재는 숙제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 2015년 11월 6일 서울 여의도 사옥 홍보관에서 정기항공운송업을 영위하는 국내1위의 저비용항공사인 (주)제주항공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을 개최하고 상장기념패 전달 뒤 승무원들과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률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최규남 (주)제주항공 대표이사, 정영채 NH투자증권 부사장, 김진규 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 / 사진=뉴스1
“아니요. 우리 모두가 해낸 일이죠.”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中)

지난달 25일 최규남 제주항공 사장은 김포공항 롯데몰 롯데시네마에서 임직원들과 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을 관람했다. 영화는 비행기 기장 설리가 기체 고장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승객 전원을 살린다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 속 설리는 영웅이다. 그리고 모든 공로를 기내 전 직원에게 돌리는 겸손한 리더로 묘사된다.

항공업계에서는 최 사장이 제주항공 창립 12주년을 맞아 이 같은 영화를 관람한 이유로 “주인공이 그랬듯 전 직원과 함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최 사장은 향후 2년간의 성과에 따라 제주항공의 영웅이 되느냐, 혹은 추락하는 비행기 속 기장이 되느냐의 기로에 선다.

◇ 행운의 ‘엔저’ 타고 쑥쑥 크는 제주항공

이달 들어 원·엔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미끄러졌다. 미·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이 미국의 환율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탓이다. 일본 여행길 부담이 줄어들면서 ‘한국-일본 하늘길’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제주항공에겐 호재다. 일본노선에 대한 좌석공급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제주항공으로서는 엔저(低)를 실적 상승 디딤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제주항공이 한국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의 통계를 활용해 지난해 한·일 노선에 취항하는 13개 항공사 수송실적을 분석한 결과, 6개 국적 저가항공사(LCC) 비중이 40.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항공 등 국내 6개 LCC가 수송한 유임여객(환승여객 제외)은 전체 1419만5900명 중 574만5300명이었다. 이 가운데 제주항공이 지난해 한·일 수송여객 중 11.7%를 실어 날랐다. 국적 LCC로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했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인천, 김포, 부산을 기점으로 일본 6개 도시 11개 노선에 196만6000여석을 공급, 일본기점 국제선에 취항한 18개 해외 LCC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항공정보 제공업체 OAG의 최근 발간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항공의 지난해 공급석 증가율은 47%로 일본 피치항공(44%) 보다 높다.

제주항공은 올해도 일본노선에 대한 좌석공급을 늘릴 계획이다. 지난달부터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의 노선에 증편을 한데 이어, 주14회 운항하던 인천-후쿠오카 노선을 2월 중에 주2회, 3월 중에는 주3회 추가 운항한다.

한국 여행객이 늘고 있는 오사카 노선도 2∼3월 중에 기존 주14회에서 주19회로 늘린다. 인천-나고야 노선은 3월 중에 주14회로 늘려 하루 두 차례 운항할 예정이다. 엔저 열풍을 타고 일본 노선을 ‘황금 수익원’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지난달부터 일본으로 향한 국내 여행객은 패키지 상품으로 10%, 개별여행상품으로 20% 이상 늘었다”며 “엔저가 계속될 경우 증가 폭은 더 커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 덩달아 뛴 ‘최규남 주가’…“치밀한데 공격적이야”

최규남 제주항공 사장. / 사진=제주항공
항공업계에서는 일본 노선 증편을 포함한 제주항공의 공격적 행보를 두고 “금융전문가인 최규남 사장의 냉철한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즉, 제주항공 성장이 단순히 우호적인 시장 환경 덕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 사장은 지난 2012년 8월 제주항공 수장에 올랐다. 당초 최 사장의 항공업계 진출을 두고 제주항공 내부에서도 물음표가 찍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사장이 밟아온 경영코스가 ‘항공통’이 아닌 ‘금융통’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포드대 공업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최 사장은 1989년 씨티은행 기업금융부를 거쳐 2006년 보광창업투자 고문, 2010년 미국계 벤처투자회사 이스트게이트파트너스 한국법인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제주항공 사장 부임 전까지 항공업계에서 종사한 이력이 전무했다.

숫자와 전략에 능한 최 사장의 리더십은 항공업에서도 빛을 발했다. 부임 첫해인 2012년 제주항공 매출 규모는 3411억원이었다. 그러나 최 사장이 현장예약발권 서비스, 특가 항공권 수하물 유상 제공 등과 같은 유료 서비스를 적극 도입한 결과, 매출은 2015년에 608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매출이 느는 동안 제주항공은 번만큼 많이 남기는 ‘알짜’ 회사로 변모했다. 제주항공 영업이익은 매년 늘고 있다. 2012년 22억원에 그쳤던 영업이익은 ▲2013년 151억원 ▲2014년 295억 ▲2015년 514억으로 상승곡선을 탔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제주항공은 영업실적 공시를 통해 지난해 매출액 7476억원, 영업이익 587억원, 당기순이익 53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매출액은 전년보다 22.9%, 영업이익은 14.2% 각각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전년보다 12.7% 늘었다.

22일 국내 항공사 한 관계자는 “LCC가 소위 뜰 수 있다는 전망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경쟁회사들이 늘어나게 된다면 박리다매 수익구조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며 “최규남 사장은 공격적인 배팅으로 이런 우려에 맞섰다. 젊은 CEO의 패기가 아닌 금융전문가로서의 수 싸움에 능한 게 성공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 뒤쫓는 진에어에 반일 기류 극복 과제

최규남 사장 리더십에 제주항공 모회사인 애경그룹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 덕에 최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임기 2년의 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최 사장이 10년 이상 제주항공을 진두지휘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다만 최 사장의 성공기는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 지는 앞으로의 경영행보에 달렸다. 대한항공 지원을 등에 업은 진에어를 비롯한 경쟁 LCC 공세가 거센 상황인지라, 작은 경영실수가 실적을 꺾을 수 있다.

진에어는 대형기종인 B777을 국내 LCC 중 최초로 도입했다. 항공 성수기에 제주항공보다 더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여력을 갖춘 셈이다. 여기에 두 번째 장거리 노선 취항을 앞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이 침몰한 상황에서, 한진그룹이 조양호 회장 차녀인 조현민 진에어 부사장을 과감히 밀어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후쿠시마 운행 강행에 따른 역풍도 문제다. 제주항공은 내달 18일 후쿠시마공항에 전세기를 띄운다. 오전 11시 30분 현지 승객들을 태우고 인천으로 이동한 후, 같은달 20일 오후 6시36분 후쿠시마공항으로 귀환하는 일정이다. 제주항공 일부 직원들이 방사능 피폭 우려를 표했지만, 사측은 “후쿠시마보다 오히려 서울의 방사능 수치가 더 높다”며 비행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제주도내 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주탈핵도민행동’은 22일 성명을 내고 “국내 1위 저가항공사를 자부하며 안전과 타협하지 않겠다던 제주항공이 각종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자사의 노동자들을 밀어 넣는 행태를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행 커뮤니티 등 인터넷 상에서는 “제주항공 비행기를 이용하지 말자”는 불매운동 조짐이 일고 있다. LCC 항공사 간 티켓 가격차이가 대동소이한 상황으로, 소비자 변심은 치명적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올해 제주항공이 지속적으로 기단을 확대한다면 이를 통해 보유항공기가 30대를 넘어선다. 취항 11주년을 맞은 올해 중견 국적항공사의 입지를 다져나갈 절호의 기회“라며 “후쿠시마 비행계획은 바뀐 게 없다. (최 사장의) 특별한 지시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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