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구속’ 사태로 본 애국심 마케팅의 허실…동정 보단 오히려 부정 여론만 키울 수 있어

지난 16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뒤로 보수단체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다. / 사진=뉴스1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삼성이 시간이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일각에선 삼성이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와 같이 애국심 마케팅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라 전망하지만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정작 삼성은 자중하는 모습이다. 재계에선 “지금 상황에 삼성 뿐 아니라 모든 기업들에게 애국심 마케팅은 부작용을 낳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은 삼성에겐 단순 총수 구속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향후 모든 주요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내부적으로 3월 안에 모든 인사 및 조직 개편을 마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조직 개편 시점을 특검 수사 완료 후로 정한 것인데,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이를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조직개편이 4월 이후로 미뤄지면 자칫 1년 중 반 가까이를 조직 채비도 못하고 보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3월 주주총회까지 이재용 부회장 부재 속에 하게 될 전망이다. 이번 주총에선 엘리엇과 삼성의 대결이 벌어질 예정이었는데 총수 구속으로 사실상 엘리엇의 입김이 더 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이 되자 보수단체 등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 구속 → 삼성 경쟁력 약화 → 국가적 손해’ 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특검을 비판하고 나섰다. 당사자인 삼성은 2년 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와 달리 적극적 호소전략을 펴기 보단 조용히 수사에 대처하는 모습이다. 당시 삼성물산은 신문 등에 한국 대표기업 임을 강조하며 애국심 마케팅을 펼쳤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재계에선 달라진 시장상황 및 사회풍조가 더 이상 애국심 마케팅이 힘을 쓰기 어렵게 됐다며 애국심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삼성이 애국심에 호소를 하려들면 오히려 더 큰 시장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다”며 “현재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추후 대책을 세우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 애국심 마케팅, 자칫 현 정부와 공범 이미지 부각될 수도   

현재 불안정한 정국도 애국심 마케팅을 펴는데 제약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국심 마케팅을 펴게 되면 특정 정치세력과 묶이게 될 수 있단 것이다. 한 특검 수사대상 기업 관계자는 “애국심 마케팅 본질은 결국 정부와 같은 편에 서게 되는 것인데 지금 (애국심 마케팅을)시도하면 결국 일부 보수 시위대나 특검 수사를 받는 청와대와 스탠스를 같이 하게 되는 꼴”이라며 “괜한 비판 여론에 시달리게 될 수 있어 삼성은 물론이고 모든 기업들이 자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처럼 떠오르게 되면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화 되고 시장이 커지게 됐다는 것도 애국심 마케팅이 먹혀들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대표적 사례가 현대자동차다. 한때 수입차가 일부 고소득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국산차를 타는 것이 애국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수입차가 대중화되면서 승승장구하던 현대차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현대차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2.6% 줄어든 1조212억원을 기록했다. 1월 판매실적을 보면 해외에선 늘었으나 국내에선 지난해보다 10% 줄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시장이 글로벌화 되고 소비자 선택권이 늘어나 국산차니까 타주자는 식의 마케팅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됐다”며 “총수 문제가 있든 기업 국적이 어디든 어떻든 제품만 잘 만들면 팔리는 시장 분위기가 잡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 구속이 삼성전자 경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갖가지 전망이 난무한다. 주요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있는 반면, 외신 등에선 삼성전자 경쟁력 자체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칼럼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에도 삼성전자 비즈니스는 매끄럽게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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