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불공정거래 넓게 봐야 …미공개정보나 개인 단속만으론 한계

최근 한국거래소나 금융감독원은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증시에서 불공정 거래를 몰아내겠다고 나서고 있다. 한미약품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가 끊이지 않고, 정치 시즌을 맞아 정치인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증시를 떠나는 투자자를 잡거나 쓰러져가는 증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정작 개인들의 불만이 큰 기관투자가의 시세조종 행위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정치권이나 당국의 규제를 보면 미공개정보 이용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집중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 소속 김관영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부터가 그렇다. 이 법안은 증시 질서 교란행위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 의원은 한미약품 사태 등 늑장공시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시장 교란행위가 끊이지 않아 법 개정안을 냈다고 한다. 정부는 앞서 지난 2014년 늑장공시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했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으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했으나 효과는 미미하다.

한국거래소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감안해 테마주 선제 대응 방안을 내놨으나 관련주들의 급등락은 여전하다.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기존 1일 1회씩 냈던 장중 건전주문 안내를 2회로 늘리고 가장성 매매 등 이상매매 계좌를 관계기관에 즉각 통보키로 했다. 또 사이버 루머가 빈발한 기업에 '사이버 Alert'를 발동해 해당 기업의 자발적 해명을 유도키로 했다지만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금융감독원도 검찰고발을 늘리고 시민감시단까지 운용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불공정거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해 전년 대비 37.7% 늘어난 208건의 불공정거래를 접수해 이 가운데 104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치권이나 감독당국이 시장을 건전하게 만들려는 시도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규제의 핵심이 미공개정보 이용이나 개인의 시세조종에 집중돼 있고 정작 중요한 기관투자가 등 큰손들의 시세조종 행위는 외면하고 있는 느낌이다.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달래기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 시점에선 국민연금을 비롯한 큰손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주가를 짓눌러 시장을 황폐화하고 투자자를 몰아내고 있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현 시세조종 규제 개인에 집중


그런데도 당국은 시세조종 규제에 대해선 일반투자자에 집중하고 기관투자가에 대해선 느슨한 잣대를 대고 있다. 금감원 증권불공정거래신고센터는 개인들이 HTS를 이용한 허수주문 등 시세조종에 대해선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관들의 시세조종은 제시하지 않았고, ‘기관투자가의 정상적 매매주문은 허수성 매매주문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시각 때문에 큰손들의 실질적 허수주문까지 정상주문으로 볼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현행 규정은 ‘거래 성립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를 대량으로 제출’하는 경우를 시세조종 행위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세에 근접한 주문이더라도 규모가 지나치게 클 경우 거래 성립 가능성은 극도로 줄어들고 시세에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루 거래량의 2~3배나 되는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경우 증시가 소화하지 못해 주가가 급락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 기관투자가를 비롯한 큰손들이 하루 거래량의 서너 배에 달하는 대규모 매물을 쌓아놓아 주가를 억누르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특히 증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하루 거래량이 1만주에도 미치지 못하는 종목들이 허다하기에 일반투자가가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크다.

지난 10일만 해도 당일 거래량 1만주 미만이 228종목이나 됐고 5만주 미만은 430종목이나 나왔다. 완전경쟁 상태가 돼서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할 증시가 시장실패의 전형적 사례인 불완전경쟁 상태로 전락한 것이다.

이처럼 거래량이 급감한 종목에 큰손들이 대규모 매물을 쌓아놓으면 자금이 급한 개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저가에 매물을 내놓아야 한다. 개인들이 증시에서 털리는 게 대부분 이래서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당국이 기관투자가나 외국인에게 절대로 유리한 차별적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들도 이론적으로는 대주를 통한 공매도에 참여할 수 있으나 수수료가 비싸고 이용기간이 너무 짧아 실제 이용 규모는 극히 미미하다.

이에 반해 기관투자가나 외국인은 1년까지 대차거래가 가능해 마음 놓고 시세를 주무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떨어지는 기관투자가들이 대차를 통한 공매도에 집중함으로써 일반투자자를 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가 미미한 종목들의 매매를 유도해 시장을 조성해야 할 증권사들이 대차거래에 앞장서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자금을 강제로 끌어 모아 거대 세력이 된 국민연금 또한 위탁운용사들의 손목을 비틀어 중소형주 매도를 강요하고 대주거래에 앞장서서 공분을 사고 있다. 큰손들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시장을 망치는 사례들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우월적 지위 남용을 불공정거래의 대표적 사례로 규정하고 있다. 갑질을 막아야 시장에서 건전한 경쟁이 일어나고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취지에서다.

우월적 지위 남용 방치해 시장실패 초래


그런데 증시 감독당국은 우월적 지위 남용을 방치함으로써 시장을 불완전경쟁 상태로 전락시켰다. 중소형주 시장 형성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기회마저 위축시켰다.

지금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또 평균 이상의 이익을 내는 기업들조차 주가순자본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 어느 지표로 보더라도 형편없이 낮은 수준에서 주가가 머물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해서 저평가된 한국 우량주를 운신이 자유로운 외국인은 줍다시피 쓸어 담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당국은 이제라도 기관들의 시세조종을 세밀히 따져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그게 쉽지 않다면 시장의 거래가 회복될 때까지 만이라도 공매도를 일시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거래부족 종목에 대한 시장조성 의무도 강화해야 한다. 하루 한 주도 거래되지 않는 종목들이 매일 나온다는 게 정상적 시장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는 적은 게 좋다. 그렇지만 그게 시장실패가 나타나도록 큰손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까지 허용하란 얘기는 아니다. 불완전경쟁 상태를 방치한 채 한국 자본시장의 앞날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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