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AMP 입주 스타트업 선정해 롯데백화점·롯데멤버스 등 계열사와 연계
"우리는 투자 회사가 아니라 서비스 회사다."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가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말이다. 스타트업이 사용하는 입주공간이 ‘집’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김 상무는 물건이 망가지면 고치면 되고, 더러워지면 치우면 된다고 말한다. 일하는 공간이 아닌 사람사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도다.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창업 아이디어도 잘 나온다고 한다.
김 상무는 창업가이자 투자자다. 첫 직장은 포스코 연구원이었다. 1999년 인터파크 CTO(최고기술경영자), CMO(마케팅경영자)를 지냈다. 그 후 지마켓을 공동창업하고 2007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와 사업에 도전했다. 2년 뒤 한국에 돌아와 엔젤투자사 대표와 사물인터넷(IoT)기업을 운영했다. 2015년 2월 롯데 정보통신 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0일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롯데 액셀러레이터에서 김영덕 사업총괄 상무를 만났다.
어떻게 롯데액셀러레이터 사업에 합류하게 됐나.
롯데그룹은 2015년 11월 신사업 발굴로 액셀러레이터 사업을 시작했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를 망하게 할 사업을 해보라’고 주문했다. 미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컴비네이터처럼 롯데도 스타트업 투자에 도전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벤처 사업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다보니 사업에 합류하게 됐다.
롯데그룹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대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스타트업 투자는 가장 효과적인 사회공헌 활동이다. (스타트업에) 투자된 돈들은 확대 생산돼 시장으로 나간다.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와 고용창출 문제도 해결된다.
변화에 대한 욕구도 컸다. 사실 롯데그룹은 외국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기업이다. 대부분 사업이 유통이나 서비스 사업이고 고객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으로 고객경험을 향상시켜야 한다. 과거와 달리 좋은 위치에 백화점을 만드는 마케팅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술력과 높은 사업 이해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업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롯데그룹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그룹 혁신 방향을 잡았다. 당장 스타트업들이 성장동력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해하고 꾸준히 지원과 투자해야만 미래성장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
변방에서 미미하게 일어나는 혁신이 큰 힘을 가진다는 ‘파괴적 혁신 이론’이 있다. 최근엔 파괴적 혁신과 정보통신(IT)기술이 합해진 빅뱅 혁신까지 등장했다. 속도와 규모도 훨씬 크다. 대기업이 이런 흐름을 잘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업계 정보망을 잘 구축하고 소통해야 그룹 내 혁신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
액셀러레이팅 사업을 총괄하며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기업 문화다. 롯데는 지난 50년 동안 시장 선두를 이끌고 있는 기업이다. 국내 최고 수익을 내는 호텔업, 백화점, 면세점을 가진 재력있는 회사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성공들이 지금 파괴적 혁신시대, 빅뱅 혁신시대에는 장애물이다. 기존 임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영방법들이 스타트업 생태계와는 맞지 않은 것이다.
롯데 액셀러레이터는 롯데 내에서도 혁신 창구다. 우리는 스타트업과 계열사의 사업협력을 주도한다. 그러나 POC(소비자 접점)에서 상호 이해가 일치되지 않을 때도 있다. (롯데 액셀러레이터 사업) 투자 규모와 절차를 기존 롯데 임원들과 협의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롯데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기준은.
스타트업은 초기기업이 대부분이라 성장성과 수익성 예측이 어렵다. 롯데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을 선발할 때 외부 전문가까지 7명 정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전문가들이 모이면 집단지성이 생긴다. 사업성에 대한 의견들을 주고받으며 일정 기준이 세워진다. 450개 스타트업들이 지원하면 20대 1, 혹은 30대 1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는데 (뽑힌 기업들을 보면) 사업성이 상당히 있다.
최종선발할 때 고려하는 것은 롯데 액셀러레이터와 맞는 회사다. 예를 들어 반도체 회사는 성장성이 높다. 그러나 유통 기업인 롯데와는 맞지 않는다. 롯데그룹이 가진 백화점, 마트, 전자제품사 등 유통채널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우선이다.
특히 신기술 활용에도 롯데는 실 수요처가 된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로봇기술을 가지고 매장 내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고객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같은 경우도 롯데월드나 롯데시네마에서 활용 가능하다.
결국 롯데그룹과 잘 맞는 스타트업들은 미래성장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협력사업이 성공하면 성과로 이어지고 롯데그룹과 인수합병(M&A)를 맺을 수도 있다. 결국 그룹 내 개방 혁신이 이뤄지는 것이다. 서로에게 윈-윈(win-win)이다.
롯데 액셀러레이터가 선발한 스타트업 분야가 다양하다. 핀테크나 하이테크 스타트업 경우에는 전문 액셀러레이터가 더 낫지 않을까.
핀테크 사업은 다양한다. 롯데그룹에도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등 금융 관련 사업이 있다. 롯데멤버스(롯데 계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멤버십)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상당하다. 핀테크를 사용자라고 해서 모두 금융 서비스만 하는 것은 아니다. 롯데 그룹이 가진 보험사와 카드사의 막강한 데이터는 충분히 경쟁력있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확장할 수도 있다.
주변 금융 액셀러레이터들은 제약이 많다. 스타트업을 도와주려고 하지만 금융사이기 때문에 가지는 제약들이 존재한다. 초기기업인 스타트업에겐 유연성이 중요하다. 편한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롯데 액셀러레이터의 매력은 자유로움이 아닐까 한다.
1, 2기 입주기업 중 성공한 스타트업이 궁금하다.
지난 롯데 액셀러레이터 1기는 13개 기업 중 10개가 후속투자에 성공했다. 6개월정도 보육받고 나가서 외부 벤처캐피탈 추가 투자를 받기도 한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롯데 액셀러레이터) 졸업 이후 회사 가치가 3배 정도 뛰었다. 2기는 아직 졸업 전이다.
1기 기업 중 핀테크 보안인증업체 센스톤은 롯데 멤버스와 사업을 진행 중이다. 롯데 계열사와 협력에 성공한 기업이다. 지금은 해외 진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밖에도 테크기업 스마트와치, 호텔 매니지먼트 업체 두닷두도 졸업 후 회사 가치가 7~8배가 올랐다. 남성 패션 큐레이션업체 맵씨는 롯데백화점이 3억원 후속투자를 결정했다. 나머지 스타트업들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인다.
선발과정에서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 중 하나가 계열사와의 연계다. 롯데 그룹이 가진 다양한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수요처가 나오기도 한다. 가상현실 과 영화(롯데시네마)의 접목도 내부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1기에서 롯데칠성음료와 협업한 스타트업이 있다. 알루미늄 캔을 재밀봉하는 캔뚜껑을 만든 회사다. 이 제품이 상용화된다면 해외 진출 기회도 많다고 생각한다.
코카콜라도 롯데 캔뚜껑을 도입할 수 있다. 계열사와 연계는 활짝 열려 있다. 산업용 광합기기를 만드는 회사는 카메라를 만드는 롯데캐논과 협업이 가능하다. 잘 연결이 된다면 해외 광합기기 시장까지 동시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대기업을 활용해 세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롯데 액셀러레이터 매니저들은 16개 기업 중 3~4개를 전담한다. 어떻게하면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롯데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매니저들은 자기가 맡은 스타트업이 성장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는 심정과 같다.
롯데 액셀러레이터는 어떤 스타트업을 원하나?
혁신은 소리없이 나타난다. 이미 세상에서 혁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더 이상 혁신이 아니다. 엑셀러레이터가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뽑는다’라는 규정을 내세운다면 오히려 스스로 가두게 된다. 롯데 액셀러레이터는 어떤 사업을 집중적으로 보지 않는다. 사업성이 있다면 뭐든지 본다. 가장 우선으로 보는 것은 ‘롯데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냐’다.
이밖에도 불확실한 사업모델을 이끌 수 있는 ‘뚝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성공한 벤처기업들도 자신들이 성공할지 몰랐다. 성공한 창업자를 보면 뚝심이나 맷집이 탄탄하다. 스타트업 사업은 집념이 없으면 힘들다. 창업자들과 싸우기도 하고 투자를 받을 때 동업자와 결별하기도 한다. 빚을 걷거나 파산하기도 한다. 그런 힘든 과정들이 평균 3년 정도다. 하지만 창업자가 스스로 열정이 있으면 결국 극복한다.
롯데 액셀러레이터에 지원하는 450개 스타트업 모두 면접절차를 밟는다. 전화나 대면 면접으로 대표의 뚝심을 보려고 한다. 마지막 기준은 ‘사람’이다. ‘험난한 길을 버텨낼 수 있을만큼 단단함이 있나’를 보는 것이다. 좋은 품성과 공감 능력, 소통, 결단성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3~4년 전 엔젤투자사 대표로 있었을 때다. 사업 계획은 별로여도 오기를 가진 친구들은 결국 성공하더라.
해외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베트남 액셀러레이터 VSV와 업무협약를 맺었다. 주목하는 해외 시장이 있나?
롯데 그룹은 베트남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롯데 센터도 베트남 하노이에 있다. 보통 차세대 먹거리는 중국에 있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스타트업 밀도가 높다. 현실적으로 따라가기 어렵다. 미국만큼 중국 시장도 한국 스타트업에게 힘들 수 있다. 지금은 확률이 높은 쪽에 투자해야 한다.
동남아는 스타트업에게 좋은 기회의 땅이다. 우선 인구와 자본이 많다. 앞으로 성장가능성도 보인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베트남부터 시작해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로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지금은 시험 기간이다. 베트남 스타트업 생태계 진출을 위해 현지 브랜딩을 해야한다. 롯데 액셀러레이터 직원이 8명 뿐이라 베트남 지점을 낼 순 없다. 하지만 롯데정보통신이나 롯데호텔과 협업해 베트남 실리콘밸리를 투자, 육성할 계획이다.
앞으로 국내 스타트업 창업방향은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보는가?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원천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다. 원천기술 하나만으로 세계 시장을 이끌어나갈 순 없다. 그러나 부가적인 기술은 사업성이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platform)같은 경우에도 개발 비용이 비싸 세계적인 회사들이 주로 연구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은 그 외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앞으로 데이터 중심 사업이 중요해질 것이다.
고객 결정과 데이터는 세밀하고 다양하다. 이것을 잘 잡아낸다면 사업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 아마존이 열어주는 기술을 가져와 특정 영역에서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존 창업자들도 데이터 접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을 분석하고 측정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올해 롯데 액셀러레이터 방향과 목표는.
넓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주 롯데 계열 광고사인 대홍기획과 혁신적 아이디어 제품 공모를 열었다. 공개적으로 아이디어를 모아 광고사와 스타트업 간 협업을 만드는 것이다. 또 오픈 이노베이션 확대 기대가 크다. 롯데멤버스 DB(Database)를 모아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롯데 캐논 대표와 이야기해 스타트업 협업 방안도 늘릴 예정이다. 캐논이 가진 글로벌한 판매채널이나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간거래) 설비들을 연계한다면 스타트업은 큰 판로를 얻게된다.
개인적인 목표는.
지금 하는 일이 보람차고 재밌다. 투자를 통해 도움을 준다는 것이 기쁘다. 입주기업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 한 기수 끝나면 형동생처럼 계속 친하게 지낸다.
지마켓 공동창업자로 쌓아놓은 전자상거래(E-commerce) 전문 지식을 더 활용하고 싶다. 전자상거래를 하는 스타트업은 직접 멘토링도 해주고 사업방향도 조언해주는 편이다. 앞으로 1~2년 정도는 이 액셀러레이팅 일에 만족할 듯 하다. 여전히 창업 욕구도 꿈틀댄다. 젊은 창업가들에게 계속 자극받는다. 지금은 체력이 안돼서 못할 것 같다, 꿈은 있지만 도와주는 역할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