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에 비해 턱없이 높은 분양가…경제폐해 막대한 분양가 거품 빼기 나설 떄

“3~4%요? 10~15% 금리라도 빌려준다고만 하면 돈 쓸 업체들은 줄을 설 겁니다.”
최근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건설업체 자금 수요는 여전히 많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시중은행 대출금리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고금리 시장이 존재한다고도 설명했다.

미국에서 금리인상이 시작됐지만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여전히 1.25%에 머물고 있다. 시중은행 일반대출금리는 3.5% 선으로 1년 전과 비슷하다. 그런데 건설업체들, 특히 중소건설업체들은 고금리라도 조달할 수만 있으면 감지덕지라고 한다. 이들은 왜 고금리로라도 자금을 조달하려고 할까. 경기가 살아나기 때문일까.
 

최근 시장 상황을 보면 전혀 그렇질 않다. 우선 거시경제 전망 자체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수출 호전 기미로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기준치 100을 한참 밑돌고 있다. 제조업 BSI가 75이고 비제조업 BSI는 그보다 낮은 74에 불과하다. 수출기업들은 그나마 긍정적 시각이 늘었으나 내수기업들은 경기 상황을 훨씬 어렵게 보고 있다.

건설업을 둘러싼 환경도 호락호락해보이질 않는다.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거래량도 급감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월 전국 아파트 중위가격은 3억 319만원으로 전월에 비해 18만원(0.06%) 하락했다. 서울 강남권과 경북 등 지방 아파트값 하락은 이보다 컸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거래량이 비수기를 감안하더라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분위기만 본다면 건설사들은 주택사업을 줄이고 은행 빚을 갚아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움직인다.

우선 전국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하는 서울 재건축이 오히려 활황을 띈 모습이다. 올해 서울지역 재건축 물량은 전년에 비해 36% 정도 늘었다고 한다. 특히 이 부문 분양물량도 전년에 비해 30%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수도권엔 노는 땅이 남아나지 않을 만큼 연립주택 건축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사나 중소건설사나 집짓기에 여념이 없다는 얘기다.

현상만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요가 줄고, 시장 열기도 식고 있으니 미분양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상황만 보면 공급물량을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업체들은 오히려 건축물량을 늘리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건설사 고리대금이라도 반겨

해답은 경기와 상관없이 넘치는 건설업계 자금 수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이 고금리로라도 돈을 끌어들여 사업을 벌이는 까닭은 엄청난 마진 때문이다. 특히 개발사업 마진은 다른 업종 종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20%대라도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진행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자를 물고도 남는다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개발사업 전문가들은 마진율이 50%가 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 건 잡는 장사다. 분양이 잘 안 돼 20~30% 깎아줘도 남기에 뛰어드는 것이다.

◇과도한 분양가 청약자는 봉

뒤집어보면 아파트 분양 받은 사람들이 봉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제까지는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아 청약 열기가 이어질 수 있었다. 워낙 아파트 값이 비정상적으로 치솟다보니 아예 청약대열에 끼지 못하는 수요도 넘쳐 연립주택이나 빌라 사업 역시 번창하고 있다.

그 동안 한국 아파트 값은 원가나 수급에 관계없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다. 공급자 주도로 형성되는 가격체계를 무시한 분양가 자율화 때문이다. 정부는 아파트 분양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이면에 수요를 부풀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떳다방’으로 불리는 중개업자들은 분양시장마다 몰려다니며 바람을 잡아 가공의 수요를 만들고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도 방치했다.

이 바람에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서울에선 평당 5000만원에 육박하는 분양가가 나와 당국과 실랑이를 벌어졌고 부산에선 엘시티더샵이 평당 2730만원이라는 비정상적 분양가를 기록하기고 했다.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분양가를 올렸지만 실제 원가는 분양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가 정한 분양아파트 기본형 건축비는 평당 483만원이지만 건설사들이 실제 계산하는 건축비는 이보다 훨씬 낮다. 정부가 건설사 반대에도 임대주택 표준건축비를 평당 320만6626원으로 고집하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땅값이 비싸다지만 대지면적의 2배가 훨씬 넘는 면적의 아파트가 올라간다는 점에서 대도시라도 분양가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지는 않다. 결국 건설사들이 대규모 광고를 하고 떴다방까지 동원해가며 가격을 올리는 근본 목적은 차익 극대화인 셈이다.

◇경제에 부담 주는 분양가 이젠 잡아야
 

그렇게 건설사들이 밀어올린 분양가가 이제는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수준이 됐다. 소득수준과 동떨어진 분양가 때문에 이제 아파트는 ‘편안한 내집’이 아니라 거품이 꺼져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이 돼가고 있다. 그런데도 건설사 이익단체처럼 돼버린 정부는 여전히 분양가 자율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내세워 건설사 이익 챙기기를 방조하고 있다.

이제 ‘폭탄 돌리기’에 동참할지 여부는 수요자 몫이 됐다. 수요자들이 청약 대열에 가세할수록 담합하듯 분양가를 인상하는 건설사의 행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높은 분양가로 아파트를 장만한 주민들은 그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담합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한때 서울 강남에서 유행했던 매매가 담합이 지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는 게 우연한 것은 아니다.

과도하게 치솟는 분양가는 무주택자에게 부담을 주는 수준을 넘어 청년층의 희망까지 앗아가고 있다. 아예 내집 마련의 꿈을 접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무주택자들이 이익을 챙기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돌려줄 방법은 청약 보이코트인 듯하다. 분양대금을 내느라 허덕일 것인지, 아니면 분양가 인하 운동에 나설 것인가. 청약 대기자들이 결정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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