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일 간 스쳐간 46개국 170개 도시…“여행은 스펙 아닌 작은 행복 채워가는 과정”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영국 역사가 토마스 풀러)

 

여행은 선()하게 묘사된다. 수많은 철학자와 문인들이 여행을 장려했다. 이 탓에 여행하지 않는 청춘은 현명하지 못한 바보로 불린다. 명언을 따르자면 파리 에펠탑을 동경하지 않고, 배낭 대신 이불 안을 선택하는 젊은이들은 속박에 굴복한 게으름뱅이다.

 

여행이 유행이 된 시대, 여행책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의 작가 원유리(필명 청춘유리·27)씨는 여행을 독촉하지도 맹신하지도 않는다. 그는 대신 <어린왕자>를 지은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명언을 따른다. “행복하게 여행하려거든 가볍게 여행하라.”

 

원씨는 670일 간 46개국 170개 도시를 돈 여행쟁이. 모든 여행의 기록을 책으로 남겨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페이스북 팔로워 7만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41500명이 원씨가 남긴 여행 발자취에 가슴 설레 했다.

 

그는 여행하는 청춘만이 행복하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용기가 없는 게 아니다. 여행만큼 소중한 게 그 맘에 있기에 비우지 않는 것이라며 오히려 안티 여행족을 응원하기도 하는 원씨.

 

지난달 23일 서울 성수동 한 카페에서 원유리씨를 만나 여행 그리고 그의 청춘에 대해 물었다.

 

두려움 또한 편견첫 여행 그리고 일본인 할머니 

 

원씨 첫 바다 건너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그 때 나이 18.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본어라곤 하지메마시떼(처음 뵙겠습니다)” 정도였지만, 어머니 응원에 힘입어 일본 교환학생행을 결정했다.

 

원씨는 출국 3일 전부터 두려웠다고 했다. 낯선 언어와 문화, 그 속에 혼자 남겨질 생각에 몸이 얼었다. 결국 일본행 배에 몸을 싣던 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때 일본인 할머니 한 분이 원씨에게 다가왔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다. 다만 어깨를 다독여주는 할머니 손길에 원씨 두려움이 싸락눈 녹듯 사라졌다.

 

낯선 두드림이 큰 위로가 됐다. 그때 알았다. 막상 두려워하던 현실도 닿아보니 무섭지 않았다. 그때 혼자라는 것, 여자라는 것, 어리다는 것, 이런 것들이 여행의 제약이 될 수 있다는 편견을 지워냈다. 그 뒤부터 여행에 대해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

 

20대가 된 원씨는 서울 한 사립대 관광레저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공부는 열심히 했다. 유명 여행사에 들어가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0시 넘어 잘 때까지 학업에 전념했다. 그렇게 장학금을 꼬박 꼬박 받아냈다. 그러나 성실함도 ‘A+’도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았다.

 

불안과 괴로움이 원씨 어깨를 짓누르던 어느 날, 하교길 버스 안에서 죽기 전 후회하는 10가지라는 기사를 클릭했다. “행복은 노력해서 오는 게 아닌, 당신의 선택이라는 문구가 원씨 머리를 울렸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부럽지 않은 성적을 받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내가 해야만 하는 걸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나는 불행했다. 괴로웠고 재미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행복은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닌, 내가 선택하는 거더라. 현실도피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원하는 건 여행이었다.” 

 

지난달 23일 만난 여행작가 원유리씨는 여행이 하나의 스펙이 돼 가는 현실을 경계했다, 원씨는 여행을 가지 않는 청춘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면서 자신이 지닌 여행 철학을 덤덤히 들려줬다. / 사진=정은비 촬영기자

지난달 23일 만난 여행작가 원유리씨는 여행이 하나의 스펙이 돼 가는 현실을 경계했다, 원씨는 여행을 가지 않는 청춘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면서 자신이 지닌 여행 철학을 덤덤히 들려줬다. / 사진=정은비 촬영기자

꽃길 보다는 흙길 여행기결국 남는 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