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이익 중시로 성장 속 낙후 공존…“인도인 특성 이해해야”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 하리아나주 구르가온에 밀집해 들어서있다. / 사진=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인도는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3위 시장이다. 지난 20년간 연 평균 7% 이상 성장하고 있다. 2014년말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 시장에 오르기도 했다. 가장 잘 사는 하마라쉬트라 주는 국내총생산(GDP) 3300억달러로 포르투갈과 파키스탄 경제와 맞먹는다.​ 현대차, LG전자 등 한국 기업은 인도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정해가고 있다. 이에 시사저널e는 지난달 31일부터 2월8일까지 8일간 인도 구르가온, 델리, 첸나이 등​에 기자를 파견해 한국 기업의 현지 사업 현황과 성장전략을 취재했다.[편집자주]


꽉 막힌 도로 차들이 이익을 탐했다. 차선을 무시하고 밀집된 차량 사이로 독일산 승용차가 빈틈을 따라 역주행했다. 육교 공사 자재가 3년째 같은 자리에 널브러져 차량흐름을 방해했다. 도로 옆 빌딩을 나온 고급 승용차에는 부랑자가 붙어 차창을 두드렸다. 빌딩 꼭대기에선 마이크로소프트나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 간판이 반짝였다. 도로에서 빌딩 끝은 보이지 않았고 빌딩을 채운 세력은 도로를 보지 않았다.

세계 경제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인도의 현재는 도로 위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세계 경제 회복이 늦어지고 글로벌 금융 리스크가 증가하는 가운데 인도는 빛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빛은 그러나 하늘에만 있고 땅에는 없었다. 인도의 현실은 경제 성장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7%가 넘는 연평균 경제 성장률을 딛고 빌딩은 하늘로 치솟고 있지만 부랑자는 여전히 길거리에서 차창을 두드리고 “카나(음식)”를 외치고 있다.

31일 인도 뉴델리 인드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20㎞가량 떨어진 하리아나주 구르가온으로 이동했다. 건설붐으로 쇠가 쇠를 때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구르가온은 인도 수도 뉴델리와 인접한 산업도시다. 구르가온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늘어나면서 고층빌딩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다만 낙후는 낙후대로 여전했다. 이에 대해 한 인도 시장 전문가는 “파이샤바술의 폐해”라고 설명했다.

구르가온 퇴근길 차와 오토바이, 사람이 뒤엉킨 도로 뒤로 빌딩 건설이 한창이다. / 사진=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인도인이 말하는 파이샤바술은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만 충족한다면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개인의 이익이라는 가치 앞에서 공공성이라는 가치가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낙후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구르가온 내 글로벌 기업 사무실 임대료는 비싼 경우 월 1500만원을 넘어선다. 반면 빌딩 사이 도로는 패고 꺼진 채로 방치돼 출·퇴근 시간에는 10분 동안 10m 이동이 어려웠다. 공공인프라는 개인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파이샤바술은 교통체증 극복을 역주행으로 연결한다.

박한수 코트라 서남아지역본부장은 “인도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뿌리내린 파이샤바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결국 인도 시장 진출에 대한 성공 혹은 실패를 판가름할 것”이라면서 “인도인들이 반드시 저렴한 가격의 제품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보다 이익이 앞에 있다. 인도기업이 국내 기업과 가격 협상을 진행할 때 보여주는 파이샤바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칼을 들고 일단 찔러보는 느낌”

인도 시장에 진출한 국내 500여개 기업은 파이샤바술에 최선을 다해 맞서고 있다. 가격 협상에 나선 인도인은 시장 가격을 반영한 한국 기업의 제안에 일단 50% 인하할 것을 요구한다. 2012년 인도 시장에 진출한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5년 사이 초기 납품가격에서 40% 넘게 가격이 내려갔다”면서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인도 기업의 지나친 자기 이익 우선은 가격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도 시장에 진출한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인도인의 파이샤바술에 대해 “칼을 들고 일단 찔러보는 느낌”이라며 “인도인들은 협상이나 계약과 관련한 국제적 상식선을 가볍게 무시한다. 무례를 넘어 무식해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자신의 이익 외에 고려하는 부분은 전혀 없다”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도 계약을 파기하기 일쑤”라고 했다.

구르가온 골프코스 로드를 따라 고층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 사진=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인도 건설 부문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고 시장 진출을 결정한 국내 한 제조기업은 매년 전년보다 200% 넘게 성장하고 있지만, 인도 시장은 매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고 말한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인도인은 공들여 잡은 면담 일정을 당일 취소하는가 하면 계약 이후 공사를 진행하는 중에도 납품 가격을 인하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면서 “초기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인도인의 마음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물건을 팔기도 어렵다. 인도 소비자는 가치만 있다면 물건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지만,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그만큼 깐깐하다. 구르가온에 새로 올라간 빌딩 사이로는 30년도 넘은 자동차가 돌아다닌다. 운전사는 화면이 흐릿해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낡은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삼성전자 인도법인 관계자는 “인도인은 10년을 사용하고 고장이 난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고 판다. 그러면 그걸 누군가 사서 고쳐 쓰다가 고장이 나면 다시 버리지 않고 판다”고 말했다.

이에 국내 기업은 품질 보증과 무상 수리 서비스와 같은 사후 관리체계를 강화해 인도인 사로잡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인도 가전업체가 제품 판매 이후 사후 관리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24시간 이내 수리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비싸지만 확실한 고급제품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인도법인 관계자는 “6000여곳에 달하는 탈루카(도서벽지)로 제품 수리를 나가기 위해 약 400대에 달하는 서비스 밴(VAN)도 갖췄다”고 말했다.

◇시장 공략 어려움 호재 볼 줄 알아야

LG전자는 중소 도시와 농촌에 있는 기존 유통망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촘촘한 제품 수리망을 갖췄다. LG전자는 지역거점 46개소, 지역사무소 124개소, 간접딜러 8700개소를 이용한 유통망으로 지난해 상반기 순이익 140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 1283억원을 넘어섰다. 인도 뉴델리에 거주하는 딜좃 싱은 “LG는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주요 가전제품 시장에서 LG의 위상은 이미 높다”고 말했다.

인도 구르가온 골프코스 로드를 따라 들어선 고층 아파트 단지가 스모그에 둘러 싸여있다. / 사진=배동주 시사저널e 기자
인도 상인 경전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면서 도덕적으로 힘들어하지 말라는 금언이 담겨있다. 아마존(Amazon)과 스냅딜(Snapdeal) 같은 온라인 유통 공룡들이 대대적으로 투자해 인도 온라인 구매 비중은 늘었지만, 지역 배달은 정작 자전거로 이뤄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박동성 효성 인도법인장은 “시장이 어렵다는 말을 호재로 봐야 한다. 내가 어려우면 모두가 어렵다”면서 “인도 시장은 크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효성은 인도 시장 진출 이후 지난해까지 4억달러(약 4672억원) 매출을 올렸다. 효성 인도법인이 스판덱스 원사 판매를 담당했던 딜러사를 교체하고 직접 판매 병행체제를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 박 법인장은 “딜러가 판매가격을 숨기고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직판 병행으로 전환하자 드러났다”고 말했다. 딜러사 운용 당시인 2007년 90톤이었던 효성의 스판덱스 원사 판매량은 지난해 1300톤으로 14배 넘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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