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유가 상승에 지난해 4분기 실적 ‘추락’…과거 불미스런 행적 탓에 리더십도 훼손

대한항공이 난기류에 봉착했다. 유가와 환율이 오른 탓에 지난해 4분기 9000억원에 육박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미주 노선 화물의 물동량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방향타를 잡은 이는 조원태 사장이다. 대표이사 사장으로 전격 승진하면서 고(故)조중훈 창업주, 조양호 회장에 이어 ‘3세 경영’ 시대를 알린 조 사장은, 올해 자신의 경영능력을 증명해내야 한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문제로 고발당한 상황에서 리더십 문제까지 대두되며 가시밭길을 해쳐나가게 됐다.

◇ 사장되고 나니 풀어야할 숙제 산적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 조원태(42)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겸 대표는 지난달 11일 대한항공 사장으로 취임했다. 2003년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에 차장으로 입사한 지 14년 만에 이룬 초고속 승진이다.

한진그룹은 캐시카우인 대한항공의 오너 경영을 강화해 수익성 회복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조 사장 체제 첫해인 지난해 성적표만 보면 나쁘지 않다.

지난해 대한항공은 영업이익이 1조1446억원(추정치)을 기록했다. 2010년 1조2358억원 이후 6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을 회복했다. 특히 3분기에만 46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 창사 이래 최대 흑자다.

그러나 앞길이 순탄치 않다. 무엇보다 최근 항공업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실적이 분기별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1일 미래에셋대우는 대한항공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각각 2조8986억원과 1683억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매출과 영업이익에 비해 각각 0.6%와 58.6%가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순손실액은 8708억원을 기록해 6분기 만에 적자 전환을 예상했다.

이한준 KT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3분기에는 항공업계에 유리한 영업환경이 조성됐지만 4분기에 영업환경이 항공업계에 불리하게 바뀌었다”며 “달러환율이 상승했고 항공유가도 2015년 4분기보다 올라 항공사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광폭 행보 불구 경영능력 ‘물음표’

조 사장은 ‘두문불출형’ 재벌 3세로 불렸다. 그만큼 대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었다. 조양호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조 사장이 그룹 간판역할을 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명실상부한 ‘조원태 원톱체제’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조 사장은 최근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 사장은 지난달 11일 대한항공 7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이틀 뒤인 13일 대한항공 본사 및 인근에 위치한 조종사 노조를 포함한 3개 노동조합을 방문해 노조위원장과 노조간부들을 만났다. 지난달 20일에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항공가족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광폭행보를 두고 본격적인 오너가 리더십 검증작업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너 3세들은 승계 시점에 맞춰 대외행사 빈도를 급격히 늘리는 경향이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최근 해외 행사에서 직접 연단에 서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조 사장이 걸어갈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지난해 불거진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에 14억3000만원 과징금을 부과하고 대한항공 법인과 조원태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 이후 오너일가에 대한 불신 분위기가 팽배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경우 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호방했다. 그러나 특유의 고집 탓에 화를 부른 케이스”라며 “조원태 사장은 이제 막 (오너로서) 입지를 다지는 시작단계라 경영능력을 입증해낸 뚜렷한 성과가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불확실한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실적 개선은 조원태 사장의 능력 범위 밖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흔들리는 리더십부터 바로세우는 게 조 사장 숙제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낙하산으로 수장 자리에 오른 재벌 3세들은 경영에 대한 소신이나 철학을 갖기 어렵다”며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을 수 없다면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전문경영인들로부터 노사관계 및 실적개선 노하우 등을 겸손히 배우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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