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주식 사는데 기관은 팔아…시장주도권·주요 기업 지배력 외국인 손에

뉴욕증시의 다우지수가 지난 1월 25일 2만 포인트를 넘어서며 새 역사를 쓰고 있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주가 상승은 미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이는 소비증가로 연결돼 경기회복을 견인하고 있다. 미국인 대부분이 401k라는 이름의 퇴직연금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어 주가가 오른 만큼 각자의 노후자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서다.
 

대조적으로 코스피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2085.45까지 찍었으나 지금껏 2000선에서 크개 벗어나지 못하고 쳇바퀴를 돌고 있다. 10년째 이 모양이라서 오죽하면 ‘박스피’라는 비아냥조 별명까지 붙었다.
 

금융위기 전에 비해 경제가 나빠져서가 아니다. 2007년 1조1227억 달러이던 한국 GDP는 지난 해 1조3775억 달러로 22.7% 늘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나마도 외국회사나 다름없는 삼성전자 주가가 치솟아 2000선 밑으로 떨어지는 창피만은 면했다. 나머지 종목들만 보면 한참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증시가 지지부진한 것은 전적으로 기관투자가들 책임이다. 외국인이 쉬지 않고 사는데도 기관들이 주식을 팔아 시장을 망쳤다. 한국 주요기업, 다시 말해 한국경제의 근간을 외국인에게 헐값에 넘긴 것이다.

◇주요기업 대부분 외국인 소유

지난 해 28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 증시를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엄밀히 말하면 이건희 회장 일가가 아니라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지금 삼성전자 지분 절반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시가총액 서열 3위인 삼성전자 우선주 지분은 77.87%(1월 26일 기준)나 들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반도체 경기 호전으로 시가총액 순위 2위에 오른 SK하이닉스의 실질적 최대주주 역시 외국인이다. 이 회사 외국인 지분율은 26일 기준 50.9%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간판주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44.12%와 47.35%다. 대주주와 자사주를 제하면 두 회사의 국내 투자자 보유분은 겨우 21.67%와 19.76%에 불과하다. 국내 포털1위 NAVER 지분 60.65%도 외국인이 들고 있다.
 

주요 은행 상황은 심각할 정도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을 제외한 주요 금융지주사 지분의 60% 이상이 외국인 몫이다. 금융그룹별 외국인 지분율은 신한지주 67.99%, KB금융 63.72%이며 하나금융지주는 70.52%나 된다. 지방 금융그룹사인 BNK금융지주의 47.31%, DGB금융지주의 60.12%도 외국인 소유다.
 

한 마디로 한국 간판기업 대부분은 외국인 소유라고 할 수 있다. 시장 전체를 보더라도 외국인은 이미 기업이나 기관, 개인투자자 전체를 제치고 시가총액 점유율 1위를 굳혔다. 당연히 한국 주요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의 상당부분은 외국인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기관들이 쉬지 않고 팔아 이런 판이 벌어졌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07년 말 325조원이던 외국인 보유주식 시가총액은 2013년 말 429조원으로 늘었다. 외국인은 또 2014년부터 지난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3조 20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대조적으로 기관투자자 보유지분의 시가총액은 오히려 줄었다. 2007년 말 210조원이던 기관 지분은 2013년 말 209조원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기관들은 2014년부터 지난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8조 4497억원어치를 순매도해 지금 지분은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작은 코스닥시장에서 기관들이 보인 행태는 심각하다. 외국인이 2014년부터 1조 5134억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동안 기관들은 5조 5250억원어치를 팔아댔다. 시장을 망가트리려고 작정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면서 기관은 시장의 주도권을 외국인에게 완전히 넘겼다. 2013년 말 한국증시에서 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이후에도 계속 팔아댔으니 지금 비중은 15%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반면 외국인의 한국증시 비중은 2013년 말 32.9%였고, 현재는 34%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기관들은 간판기업들을 헐값에 외국인에게 넘겼다. 이익 잘 내는 기업들을 팔아댔으니 대한민국의 부를 넘겨준 셈이다. 아니 대한민국을 팔아먹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헐값 매도 넘어 시장까지 망가뜨린 기관

기관들은 단지 주식을 팔아먹은 것을 넘어서 주식을 위험자산으로 매도해 일반투자자들의 접근조차 막았다. 특히 기관의 대변인격인 증권사들은 기업분석 등 본업을 팽개치고 ELS 같은 투기상품을 팔거나, 자신들도 잘 모르는 외국 상품을 감언이설로 팔아치웠다. 그 바람에 한 때 자리를 잡아가던 펀드시장은 망가졌고 투자자금은 단기로 떠돌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코스닥시장과 중소형주시장에 매물을 퍼부어 개인투자자들을 쫓아냈다. 기관투자가들을 동원해 중소형주롤 강제로 팔게 해 고사시킨 것이다.
 

지금 한국증시는 삼성전자로 겨우 치장은 했지만 안은 곪아터질 지경이다. 현대차나 신한· KB금융 등이 장부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고, 하나금융지주는 아예 장부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무구조 좋고, 금리에 비해 훨씬 높은 수익률을 내는데도 사주지 않아 이 모양이다. 외국인은 그래서 쉬지 않고 한국주식을 줍다시피 쓸어 담고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기업이 이끌고 있다.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이익을 내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기관들은 단기 차익에 눈이 멀어 시장을 망가뜨리고 기업들을 어렵게 만들었다. 증시에서 자금조달이 쉽지 않으니 벤처 창업 열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일자리 기근의 상당한 책임이 기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결국 스스로의 무덤까지 팠다. 계속되는 금융권역별 구조조정은 시장을 무너뜨린 죄에 대한 형벌이다.
 

금융당국은 이제라도 시장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한다. 퇴직연금 등의 주식투자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증시가 투기판이 되도록 방치하고, 투자자가 손해를 보는데도 검증되지 않은 회사들을 마구잡이로 상장시킨 원죄가 가볍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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