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슬아의 취준진담

‘강약 중강약’ 강약조절은 리듬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느슨해지려는 순간 강해지고 팽팽함이 극에 달하면 약해진다. 낯선 상대를 만나는 일도 그렇다. 약한 자 앞에서 강해지고 강한 자 앞에서 약해지는 강약조절은 인간이 낯선 타인에 대해 대처하는 바이오리듬이다.잃어버린 지갑을 찾았다는 형사의 연락을 받았다. 형사는 애 셋을 혼자 키우는 아주머니가 지갑을 훔쳤다고 운을 뗐다. 다리를 절면서도 매일 식당에서 일하니 사람이니 선처를 바란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원망은 사라졌다. 낯선 상대를 이해한다는 건 동정하는 일임을 깨달은 순간이다. 피해를 운운하는 게 구차해 지갑만 받고 합의해야지 싶었다. 그러나 메신저에 뜬 아주머니의 프로필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그가 가게 사장임을 암시했고 명품 가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배신감에 못이겨 바로 합의금을 요구했다. 낯선 이에 대한 이해심은 이토록 알량하다. 언제든지 동정할 수 없는 낯선 상대에게 피해를 입으면 법과 원칙을 내세울 수 있다.CCTV에서 본 빨간 패딩을 입고 나타난 아주머니는 어색함을 상냥함으로 승화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뒤 한참동안 인생사를 늘어놓았다. 이혼 탓에 25년 만에 현 남편과 혼인 신고한 이야기. 가게를 차리기까지 우여곡절. 딸 아이에게 선물 받아 처음 매어본다는 명품 가방. 상냥한 태도로 일관하는 아주머니에게 또 다시 난 강자가 됐다.자신의 약함을 내세우면 상대의 이해를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약자와 강자를 구분하는 힘의 논리가 기준이 되면 ‘내가 더 약하니 네가 이해해야한다’는 전언으로 번져 서로 자신의 약함을 은근슬쩍 경쟁하게 된다. '약자경쟁'에서 진 뒤 다시 강자가 돼 그를 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힘들게 살아온 한 여성이 손바닥만 한 카드지갑 때문에 경찰서에 가야 했으니 말이다. 아주머니와 합의를 끝내고 국수집에 들어갔다. 3000원을 카드계산하려 하자 주인은 현금 아니면 안 받는다고 면박을 줬다. 2000원 올려서 카드결제 하면 안 되냐며 애교를 부려도 소용없다. 이 가격에 카드결제하려고 하는 내가 이상한 거라는 말을 듣고 풀이 죽어 근처 현금인출기(ATM)을 찾으러 나섰다.언 손으로 현금을 뽑아오면서 식당 벽면에 걸린 사진이 떠올랐다. 지상파 방송사 맛집 탐방 프로그램 출연 사진이다. 맛집으로 유명한 가게가 세금을 안 떼이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하니 또 얼굴이 벌개졌다. 내 이해심은 이토록 강약조절이 쉽다. 현행법을 찾아보고 신고가 가능한지 찾아본 뒤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 이거 불법인 거 아시죠?”라고 따져 댔다.  

 

그러나 곧 알 수 있었다. 약함을 내세워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랄 수도 없지만 반대로 더 강하지 못하면 바로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 것도 꽤나 찌질한 일이라는 것을. 약자를 연민하는 마음은 이해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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