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전횡 줄어 기업 실적 호전되는 '감옥이론'까지…이재용의 삼성그룹은 예외일까

 

몇 년 전, 한 재벌그룹 계열사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 계열사의 그룹 회장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회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계열사 경영을 맡고 있는 그 사장은 뜻밖의 애로사항을 내게 토로했다. 즉 경영실적을 어떻게 내야 할지 고민이란다

 

만일 회장이 감옥에 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내면, 회장의 존재감을 무색케 하는 일이고, 실적이 안 좋으면 회장이 없으니 대충 일한 결과로 받아들일까 걱정이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최근 한 자산운용사 대표를 만났는데 그가 위 질문에 답을 해줬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재벌기업들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단다. 즉 회장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해당 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이 호전되는 현상 말이다

 

태광산업, SK, 한화, CJ 등이 그 사례에 속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회장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경영성과가 개선되는이른바 '감옥이론(Jail Theory)'으로까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더욱 의미심장했다. 현재 한국 재벌 2,3세 회장들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업가 정신이란 미래에 대한 도전적 꿈을 꾸고 그것을 실행케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선대 혹은 창업세대와 같은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발견하기 힘들다. 월급쟁이 계열사 사장들은 이런 2,3세 회장의 눈치만 보고 있다

 

둘째, 그들은 자신들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익편취를 해왔다. 쥐꼬리만 한 지분을 갖고 상장기업(public company) 자산을 자신들의 포켓머니화 하는데 골몰해 왔다.

 

그런 회장들이 감옥에 가면, 긍정의 임팩트가 발생한다. 우선, 자연스레 계열사 사장들에게 위기감을 불어 넣게 되고 권한위양이 된다. 회장이 시시콜콜 지시를 못하니 사장들의 자율과 권한이 더 강화된다. 회장은 감옥에서 큰 방향만 정하고 부지런한 사장들은 이를 근면하게 실행한다

 

다른 측면에서는, 회장이 배임 횡령 등으로 실형을 사는 동안, 회장을 위한 사익편취 행위는 중단된다. 일감 몰아주기, 수상한 거래 등이 중단된 만큼, 회사의 실적은 개선되는 효과를 얻는다.

 

나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비자금을 만들고, 아들 이재용씨에게 불법과 편법적 방법으로 재산을 넘겨준 것만 빼고 그는 뛰어난 기업가였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국내 로컬 회사인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똑똑한 월급쟁이 사장들을 잘 픽업해서 그들에게 큰 그림을 그려줬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에는 사장들이 알아서 좋은 실적을 냈다. 그는 또한 성공에 도취해 조직이 해이해지면 특유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위기감을 불어 넣고 조직의 긴장감을 고취시키는 능력에도 탁월했다.

 

요즘 삼성그룹이, 아니 이재용씨가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게 하고, 그 대가로 최순실씨에게 수백억을 지원했다는 사실관계가 규명된다면 이재용씨는 법적 책임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만일 이재용씨가 응분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간다면, 총수 부재의 삼성그룹 경영과 실적은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하다. 만일 실적에 큰 영향이 없다면 앞서 자산운용사 사장이 말했던 '감옥이론'은 한국에서 일반 이론으로 입론 가능한지도 모를 일이다. 3,4세 회장들이 가득한 한국 자본주의에는 암울하고 슬픈 일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