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실업률에 집약된 박근혜 정부 성적표…대선 주자들 국민에 비전 보여줘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치뤄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선거 구호다. 일본의 공세로 미국 제조업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실업자가 속출하는 당시 미국 경제상황에서 클린턴은 미국인들의 쓰라린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는 대통령에 오른뒤 미국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이끌면서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경제 이슈 중에서도 일자리야말로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임에 틀림없다. 경기가 좋으면 일자리가 늘고 임금이 오른다. 가계의 주머니도 두둑해지니 소비도 왕성해지고 경기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 사회에는 낙관론이 번진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게 그래서 나온 말이다.

지난해 치뤄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각종 추문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꺾은 것도 결국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선거 전략이 주효한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의 본산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 쇠락한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 이른바 ‘러스트벨트(Rust Belt)’의 백인 표심을 자극했다. 

 

일자리를 들고 나온 트럼프가 20여년전 경제를 앞세웠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 힐러리를 무릎 꿇린 것도 흥미롭다. "문제는 일자리야, 바보야(It's the job, stupid)"라는 트럼프의 기세등등한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45대 미국 대통령에 오른 트럼프는 미국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 팔까지 비틀어가며 자신의 공약 실천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의 으름장에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 도요타에 이어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까지 미국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나섰다. 중국 알리바바와 미국 아마존도 고용확대를 발표하는 등 트럼프식 일자리 늘리기는 미국 국내기업여부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번져가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일자리 하나만으로도 박근혜 정부의 부실한 성적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실업자수는 101만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15~29세사이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9.8%로 전년의 9.2%에 이어 또다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일자리 기근에 2월 졸업 시즌을 맞는 젊은이들은 겨울 날씨보다 더 쌀쌀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지난해보다 더 떨어지는 등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민간의 역량을 일자리 늘리기에 총결집시켜 상황을 반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일각에서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주장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뒷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본 처방이 될수 없다. 일자리의 궁극적인 원천은 뭐니뭐니해도 국내와 외국 시장을 무대로 땀흘려 뛰며 가치를 창출하는 민간 기업이다.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게 하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는 일이 급선무다 . 정권교체기마다 으례 되풀이되는 규제완화가 허황된 말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대기업 고용 확대를 유도할 수 있도록 조세감면제도를 고용창출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으로 손보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자리의 보고는 역시 중소기업이다. 국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의 88%는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4차산업혁명시대 큰 역할이 기대되는 벤처기업 육성에 적극적인 관심을 쏟아야 할 때다.

4차산업혁명은 기존의 일자리를 무력화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타, 가상현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신산업 분야에서 기존에 없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역할도 주목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되기도 하고 위기를 키우기도 하는 양날의 칼이라는 뜻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벤처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다고 창업만 늘릴 방안을 찾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산업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함으로써 새로 탄생한 기업이 중견 및 대기업으로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리 창업이 늘어도 헛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대기업들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개혁도 시급하다. 지난해 타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5시간씩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정작 필요한 인력은 길러내지 못하면서 쓸모 없는 인력만 잔뜩 배출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학과 통폐합 등 과감한 대학 구조조정에 시간을 끌지말고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

탄핵정국 속에서 대권을 꿈꾸는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오랜 경제침체로 국민이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표만을 얻겠다는 얄팍한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국민의 피부에 와닿고 국가의 미래를 크고 튼튼하게 열어갈 실효성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일자리는 경제살리기의 처음이자 끝이다. 공황이 와도 좋은 일자리만 있으면 두려울게 없다고 했다. 경제난에 지치고 정권 실세들의 국정농단에 실망한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게할 비전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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