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한진 두 총수 경영보폭 축소…“위기국면서 3세 경영인 리더십 검증 기회 될 것"

지난해 12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질의를 듣고 있다. / 사진=뉴스1

새해 현대차그룹과 한진그룹 두 총수 발밑이 얼어붙었다. 지난 세밑 이뤄진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 청문회 후유증이 연초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정몽구 회장과 조양호 회장이 대외 활동을 멈춘채 칩거에 들어간 사이 양 그룹 3세 경영인들은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룹 사업방향과 일정 등을 종합해 단행하려던 승계계획이 최순실 게이트 이후 급하게 앞당겨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과 조양호 회장은 1월 들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새해 첫 출근일 오전 8시 양재동 본사 강당에서 그룹 임직원과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시무식을 열어왔다. 지난해 역시 정몽구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새해 판매 목표와 전략 등 신년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짙은 회색 양복을 입고 백발을 곱게 빗어 넘긴 채 강당에 들어온 정 회장은 “불확실성이 높아진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그룹의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미래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전 임직원의 역량 결집을 당부했다.

그러나 올해 정 회장은 시무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그룹사가 아닌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를 비롯해 51개 계열사가 별도로 시무식을 열었다.

현대차그룹은 획일화된 조직문화를 바꾸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풍토를 만들고자 이 같은 변화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달 중순 해외법인장 회의를 예년과 달리 두 회사가 각각 자유 토론 방식으로 실시한 바 있다. 그동안 법인장회의는 정 회장이 주재하고 상향식으로 보고를 올린 뒤 지시사항을 전달받는 형태로 이뤄져왔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직접 주재하던 해외법인장 회의와 시무식에서 ‘이선 후퇴’ 한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청문회 참석 등으로 정 회장 건강이 악화된 영향과 언론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피하고자 고의적인 칩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20일 바른정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청문회 전후로 해서 현대차 대관 관계자로부터 정 회장이 지병 탓에 건강이 좋지 않다는 우려를 들었었다”며 “여기에 최근 특검수사망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몽구 회장을 포함한 모든 총수들이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역시 지난해 보다 연초 활동폭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공사 현장을 챙기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비선실세 외압 탓에 올림픽 위원장직에서 내려온 이후 대외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두 총수가 두문불출하는 사이 경영 3세 행보는 더 활발해졌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 17일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다보스에서 시작된 올해 다보스포럼의 자동차 분과위원회 세션에 참석했다. 정 부회장은 주요 완성차업체 CEO 및 전문가들과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 부회장은 지난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에도 3년 연속 전시장을 찾아 500여 국내외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5분간 유창한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조원태 대한항공 전 총괄 부사장은 지난 11일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조 신임 사장 ‘원톱체제’로 재편됐다.

조 사장은 최근 노조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 사장은 지난 11일 대한항공 7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13일 대한항공 본사 및 인근에 위치한 조종사 노조를 포함한 3개 노동조합을 방문해 노조위원장과 노조간부들을 만났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과 한진그룹이 국조특위 이후 ‘포스트 회장 체제’ 시동을 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랜 기간 그룹을 진두지휘해온 2세 경영인들이, 청문회 이후 리더십에 심한 타격을 입게 됐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이 탓에 승계 속도가 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는 “재벌 3세들은 실제 리더십을 판가름할 가늠쇠를 찾기 어렵다. 현장에서 경영능력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그룹이 어려운 시기에 놓이면 이들의 실제 경영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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