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를 뛰어 넘은 일본의 명란젓 세계화

요즘 명란젓 먹을 때 가끔은 안타깝고 분한 기분이 든다. 이유는 명란의 화려한 변신 때문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좋아하는 명란젓이 최근 기상천외다 싶을 정도로 요리법이 다양해졌다.

명란을 활용해 유럽에서 최고 진미로 꼽는 철갑상어 알, 캐비아를 대체하는 요리가 속속 선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명란 스파게티다. 요즘 인기 높은 명란 마요네즈도 예전에는 없었던 식품이다. 캐비아와 치즈, 버터의 조합을 마요네즈와 명란의 조합으로 응용해 만들었다. 

빵에 발라 먹는 명란 역시 따지고 보면 캐비아 먹는 방법의 재현이다. 하지만 한국인 입맛에는 낯선 캐비아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니 누구 아이디어인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이밖에도 명란 덮밥과 명란 라면을 비롯해 명란 활용법이 전통적인 상식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전통 음식인 명란젓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새로운 메뉴가 개발되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반가워해야지 왜 안타깝고 분하다며 심통을 부리나 싶겠지만 나름 이유가 있다. 바람직하면서도 심기가 불편한 까닭은 캐비아를 대체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명란 요리들 대부분이 우리가 아닌 일본에서 개발한 요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란 스파게티는 1967년 도쿄의 한 파스타 전문점에서 만들었다. 이탈리아에 유학했던 한 일본 음악가가 유학시절 현지에서 먹었던 캐비아 파스타의 맛을 잊지 못해 캐비아 통조림을 들고 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값비싼 캐비아 대신 일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명란으로 대신해 스파게티를 만든 것이 인기를 얻으면서 퍼졌다. 

60년대에 처음 선보였지만 최근 일본에서 다시 유행하면서 우리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 전해졌다. 그래서 지금 명란 스파게티는 도쿄 스타일의 어란 파스타(roe pasta), 내지는 일본 이름인 멘타이코 스파게티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명란 스파게티뿐만이 아니다. 캐비아처럼 빵에 발라 먹고 밥에 비벼 먹는 명란 마요네즈도 일본에서 처음 상품화돼 지금은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이제는 일본 명란 덮밥이나 명란 라멘이 맛있다며 일본으로 명란요리 맛 기행 떠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일본의 상품 기획력이 뛰어난 것을 배워야지 왜 속 좁게 질투냐 싶겠지만 역시 사정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원래 전통적으로 명란을 먹지 않았다. 옛날 일본에서는 명태가 잡히지 않았으니 비슷한 대구 알은 있어도 명란젓은 없었다. 일본인들이 명란을 먹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히구치 이즈하라는 순사가 조선의 명란을 보고 사업에 뛰어들면서 일본에 퍼트렸다. 일본이 2차 대전에 패망한 후 명란 수입을 중단했다가 1949년 카와하라 토시오(川原俊夫)가 조선 땅에서 먹던 명란 맛을 잊지 못해 후쿠오카에서 다시 명란을 수입했다. 1960년대 신칸센이 생기면서 백화점에 명란을 선물용으로 납품하면서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지금 명란이 다른 나라에서는 명란이라는 우리 이름보다는 한국에서 수입해 간 이름, 명태의 자손이라는 멘타이코(明太子)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심지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명란 대신 명태자라는 이름으로 진열대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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