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 중간 해지율 높아지는데 은행 수신 잔액은 폭증
금융권 고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경제 불황이 길어지면서 은행권에 돈을 묶어놨던 서민들이 적금을 중간에 해지하고 있다. 적금 해지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반면 여윳돈을 가진 금융 고객들은 은행을 찾고 있다. 저성장이 길어지자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고객들이 자금을 안전한 은행으로 가져간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적금 중도 해지율은 지난해 말 45.3%를 기록했다. 2015년 말보다 2.9%포인트 올랐다. 5대 은행 전체 해지 건수가 지난해 말 667만956건에서 2015년 말 656만7905건으로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중도해지 건수는 같은 기간 282만6804건에서 2015년 말 298만4306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는 적금 만기 기간 도래까지 기다릴 수 있는 고객이 늘어났지만, 마찬가지로 가계 사정이 어려워 중간에 해약해야 하는 고객 또한 늘어나는 '금융권 돈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가계 사정이 어려워지면 보험과 펀드, 적금 순으로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며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은 제자리다보니 자금 부족으로 적금을 깨는 고객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보험 해약율도 증가세다. 지난해 누적 3분기 기준으로 41개 생명·손해보험사가 고객에 지급한 해지환급금은 22조9904억원에 달한다. 2008년 금융위기(22조9000억원) 이후 보험업계 해지 환급금은 2014년 26조2000억원에서 2015년 28조3000억원대으로 확대됐다. 올해는 이 금액을 뛰어 넘으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적금 중도 해지 늘 동안 은행 수신 잔액은 폭증
불황에 돈이 쪼들리면서 적금을 깨는 금융 고객이 늘어났지만 여윳돈을 가진 고객(기업 고객 포함)은 오히려 은행권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투자 불안 인식이 커지자 자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은행에 여윳돈을 넣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 수시입출식(실세요구불예금 포함) 수신 잔액은 총 57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같은 기간(512조7000원)보다 11.7%나 늘었다.
은행권 정기예금 잔액도 지난해말 568조9000억원으로 1년만에 19조8000억원이 증가했다. 은행과 중앙정부, 국내에 살고 있지 않은 비거주자의 예금은 제외한 액수다. 지난 2012년 20조4000억원 이후 4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기예금은 가계나 기업이 일정 기간 은행에 돈을 넣어둔 뒤 이자를 받기로 하는 저축성 예금이다. 지난해 6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25%로 내리며 지난해 11월 은행 정기예금 평균금리도 사상 최저인 1.49%(신규취급액 기준)로 내려갔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기예금 평균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내려갔음에도 정기예금을 찾는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고객이 몰린 것"이라며 "이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데도 자산가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으로 몰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적금 중간 해지율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올해 금리가 높아지면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진다.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금융상품을 유지하기 힘든 서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