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 자동차 과장 연비 고발 앞장…"100번 중 1번만 승소한다면 자동차소송 판도 바뀔 것"

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던 젊은 변호사에게 어느 날 고민이 생겼다. 새로 산 차 연비가 영 시원치 않았다. 자동차사가 광고했던 고(高)연비가 아니었다. 자신의 운전습관 탓인가 싶었다. 그런데 지인들 모두 체감연비와 공인연비가 꽤 큰 차이를 보였다. 법무법인 예율의 김웅(49) 변호사가 ‘뻥 연비’와의 전쟁을 결심한 계기다.

김 변호사는 이길 수 있다 확신했다. 미국에서도 연비 거품 탓에 자동차사가 소비자들에게 보상 해준 판례가 있었다. 일부 차량들의 실주행 연비가 적시된 연비와 다르다는 실험결과도 있었다. 원고를 모아 소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패소. 납득할 수 없었다. 준비를 거듭해 항소했으나 역시 패소.

거듭되는 패소에 원고들조차 등을 돌렸다. 수임료도 받지 않고 시작한 소송이라 돈도 안 됐다. 이쯤 되면 지칠 법도 하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올해도 자동차사와의 연비 소송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 변호사는 “안 지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공정한 룰(ruel) 속에서 상식에 맞는 판결을 받아드는 날이 오지 않겠나”라며 웃어보였다.

1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법무법인 예율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 '뻥 연비'는 사실, 거짓 연비에 분노한 소비자

지난 2014년 6월 국토교통부 발표 결과에 국내 완성차 업계가 긴장했다. 국토부는 현대차 싼타페와 쌍용차 코란도스포츠 연비를 조사한 결과 이들 차량 연비가 허용오차 이상 과장됐다고 밝혔다. 그 전까지 운전자들 사이 우스갯소리처럼 떠돌던 ‘뻥 연비’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현대차는 2012년부터 제조해 판매한 싼타페 DM R2.0 2D(디젤) 복합연비를 14.4㎞/ℓ로 표시했다. 그러나 국토부 자기인증적합조사 결과 실제 복합연비가 13.2㎞/ℓ로 측정됐다. 현대차가 표시한 연비보다 8.3% 낮은 수치였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의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제작사가 제시한 연비의 허용오차범위는 ±5%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김웅 변호사는 2014년 7월 싼타페 소비자 약 6000명을 대리해 "표시된 연비를 중요한 고려요소 중 하나로 생각해 차량을 구매했지만, 과장된 연비로 손해를 봤다"며 집단 소송을 냈다. 싼타페 한 대당 150만원의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김 변호사는 이 때만해도 이길 자신이 충만했다고 했다.

“2012년 미국에서도 현대·기아차 연비가 과장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당시 현대·기아차도 잘못을 인정하고 미국정부에 벌금도 납부하고 소비자들과 합의했다. 그러다가 국토부가 싼타페를 비롯한 일부 차종 연비가 부적합하다고 판정했다. 과장된 연비를 선전함으로써 현대차는 반사이익을 얻었으니, 이를 다시 소비자에게 보상해주는 게 상식이라 믿었다.”


◇ “연비와 구매 상관관계 없다”…재판부 판결에 40명까지 줄어든 원고

승소에 대한 김 변호사 확신은 시간이 지나며 옅어졌다. 발뺌하는 자동차사도 문제였지만 수천 명에 이르는 원고와 소통하는 게 고역이었다. 여기에 현대차가 싼타페 소비자에게 1인당 최대 40만원의 보상안을 내놓자, 원고들이 동요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6000여명에 이르는 원고는 2000여명까지 줄었다.

“법원이 현대차가 제시한 40만원이 합당하다고 판결한다면 원고들은 변호사에게 8만원을 줘야 했다. 현대차가 모든 싼타페 소비자들에게 40만원씩 주겠다고 공표한 상황이었기에, 이렇게 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싼타페 소비자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거다. 40만원 이상을 받아내는 게 목표였지만, 이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설명하자 원고 다수가 이탈했다.”

김 변호사는 2년 간 현대차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싸웠다. 이른바 ‘돈 되는’ 소송은 멀리한 채, 싼타페 소송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는 현대차의 승리였다.  

 

17일 강남구 법무법인 예율 사무실에서 만난 김웅 변호사는 2년 째 싼타페 연비과장 소송을 최전선에서 이끌고 있다. / 사진=박견혜 기자

지난해 10월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는 "연비 측정 결과는 주입하는 연료와 자동차 길들이기 방법 등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또 해당 모델이 지난해 5월 단종됨에 따라 신차를 이용한 감정도 불가능해져 연비 감정에도 한계가 있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 변호사는 즉각 항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2000여명에 이르는 원고 대부분이 포기의사를 밝혔다. 현재 원고 40여명만이 남아 김 변호사와 항소를 준비 중이다.

◇ “자동차 소송 변곡점? 상식에 맞는 판례 하나”

김 변호사는 싼타페 연비 소송 이외도 한국GM 크루즈, 쌍용차 코란도스포츠 연비 문제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싼타페와 달리 원고수가 적어 이들 재판은 소액사건재판부에서 담당했다. 결과는 모두 패소였다. 연비와 구매이유 간 연결고리가 없다는 게 재판부가 밝힌 공통된 기각 사유였다.

“재판부가 유독 자동차 연비 소송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입증책임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듯하다. 이런 걸 보면 (연비보상 문제를) 꼭 자동차사 탓만 할 게 아니다. 제도와 법이 소비자를 보호하지 못 하고 있다. 특히 소액사건의 경우는 법원이 소송 자체를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판결 이유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다보니 원고들이 항소할 기력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김 변호사는 집단소송제와 배심원제가 자동차 소송에서 소비자를 보호할 최후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게 되면 수천 명에 이르는 원고들을 대리해 대표 원고만으로 소송에 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보다 많은 원고들을 끌어모을 수 있고, 변호사 입장에서는 소송준비에 더 공을 들일 수 있다. 여기에 배심원제가 도입되면 상식에 근거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김 변호사 생각이다.

“자동차 소송은 답답한 재판부, 수많은 원고, 힘을 앞세운 자동차사라는 삼중고를 견뎌야 한다. 그래도 소송을 이어가는 이유는 1%의 가능성 때문이다. 100명의 판사 중 1명의 판사는 양심과 상식에 근거한 판결을 내려주지 않을까. 그 하나의 판례가 앞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소송 판도를 바꾸는 변곡점이 될 거다.”

 

김웅 변호사는 자동차사 소송 과정이 매우 지난하다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자동차 소송에서 소비자들이 보다 유리한 환경에 놓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사진=박견혜 기자

김 변호사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며 한숨을 크게 뱉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2년 간 몸도 마음도 지친 탓에 자꾸 부정적 얘기를 꺼내게 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자동차 소송을 추가적으로 이어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패소들이 언젠가 자동차 연비 첫 승소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열정으로 시작한 소송이지만 사실 자동차 소송 정말 험난하다. 후배들에게 권하기조차 미안할 정도다. 그래서 싼타페 소송 결과가 나오면 이기든 지든 원고들과 호프집 가서 “우리 정말 고생했다”고 서로 어깨 좀 토닥여 주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동차회사한테 이 말 한마디 해주고 싶다. 제발 쉬쉬하지 말라고.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알아주는 게 소비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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