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결의 갓수, 지구에 매달리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높은 신분, 많은 재산 등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워낙 알려진 단어라 그런지 노블레스라는 웹툰도 만들어졌다. 이 웹툰은 강대한 힘을 가진 뱀파이어 귀족경찰 노블레스가 귀족, 인간, 늑대인간 등을 돌보고 세상의 번영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꼰대, 혹은 꼰대질은 '직장이나 모임 따위에 오랫동안 몸 담았던 이가 타인에게 관습을 강요하는 태도를 낮잡아 일컫는 말'로 한국 사회 기피대상으로 꼽힌다. 최근 "내가 꼰대인지 판단하는 법", "꼰대짓 안하려면?" 식 제목으로 꼰대를 다루는 기사가 많아졌다. 그만큼 꼰대도 싫고, 꼰대가 되는 것도 두려운 사회다. 노블리스와 꼰대는 같은 논리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꼰대들은 '내가 너보다 잘 알아, 내가 너보다 지위가 높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아' 식 논리로 상대방의 행동을 제약한다. 노블리스도 다르지 않다. '내가 너보다 돈 많아, 내가 너보다 신분이 높아'식 논리로 상대방에게 선행을 베푼다. 선행을 베푼다는 건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희망사항이자 도덕적 규범일 뿐, 실제로 지키는지는 모른다. 본질적으로 비슷한 두 단어에 한국사회는 다르게 반응한다. 꼰대는 나쁜 놈이라서 기피대상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 지켜준다는 뜻으로 좋게 쓴다. 하나는 웹툰도 있지만, 다른 하나는 기사에서 조심스레 다룬다. 한마디로 꼰대는 나쁘고 노블리스는 좋다. 우리가 젊은 나날에는 꼰대가 싫어도, 결국 나이 먹고 꼰대가 되는 이유는 '꼰대는 싫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을 때 없던 지위와 권력, 부와 명예가 나이 들어 주어진다면 '베풀겠다'는 명목아래 꼰대가 된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선민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뜻이다. 익숙한 갑을관계로 표현하자면, 갑은 을을 돌보는 의무를 행사하는 만큼 갑의 권리를 누리려 한다. 그럴 의도가 없다고 치더라도 갑의 지위가 합리화되는 건 틀림없다.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갑이든 을이든 이에 동의한다. 다 그렇게 꼰대가 되니까. 기득권 계층이나 가족, 학교, 소규모 모임이나 직장에서 꼰대짓하는 사람이나 내면심리는 다르지 않다. 다 노블리스 같은 갑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현실은 노블리스의 다른 이름인 꼰대가 될 뿐이다. 역사도 봐도 그렇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왕족과 귀족의 권위가 높고, 그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던 과거 앙시엔 레짐(ancien regime)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당시 수탈에 가까운 높은 세금을 합리화하는데 곧잘 썼다. 혜택을 받은 만큼 의무를 다했는가. 아니 프랑스 귀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프랑스 귀족이 없어지고 영국 귀족들이 사용하는 말이 됐고 한국에서도 잘 쓰이고 있다. 꼰대도 싫고, 꼰대가 되기도 싫은 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좋아하지 않는다. 소위 엘리트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으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반대로 꼰대들을 양산하고 불합리한 권력과 부정한 기득권을 합리화시킨다. 이를 옹호할 시간에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다시 한 번 읊겠다. 도덕을 갑질하는 사람이 '갑질하지 말아야지'라는 도덕심을 새길 수나 있을까. 지키지도 않을 의무를 개인의 도덕적 신념에 맡기며 부당권리를 합리화하는 모습을 견디기에는, 내가 그리고 이 사회가 녹록찮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