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이들 태운 고래 증강현실로 제작
지난해 광화문에는 ‘진실을 이양하는 고래’가 나타났다. 고래는 광장 위를 떠다녔다. 촛불 위로 고래를 띄운건 이군섭 쿼트 대표였다. 이 대표는 증강현실(AR)로 만들어낸 화면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13일 서울 강남구 쿼트 사무실에서 이군섭 대표를 직접 만났다.
이군섭 대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생 때는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 정적인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즐거웠다. 그 후 미디어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다. 디자인 하나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기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디자인 콘텐츠 하나를 만들면 사람들이 바로 반응하는 것이 즐거웠다.
쿼트(quote)는 미디어 디자인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같은 새 기술을 접목해 디자인한다. 사회 캠페인을 비롯해 상업광고, 기업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이 대표는 모든 것에 인용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용하다라는 뜻을 가진 회사명 쿼트도 그런 의미로 지었다.
◇ “사회적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
디지털 광고 회사에 다니던 이군섭 대표는 지난해부터 창업을 준비했다. 광고 등을 조사해 실질적인 상업 활동을 연구했다. 자연스럽게 이 대표는 ‘뉴미디어’에 관심이 생겼다. 그 후 같은 팀에 있는 사람끼리 뜻을 모았다. 뉴미디어 분야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을 차리자는 것이었다. 같은 마음으로 회사를 나온 사람은 4명. 그러나 쿼트는 2명으로 시작했다.
“(창업 준비를 위해) 많이 시도했다. 원격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자택근무도 해봤다. 회사를 나올 때 (팀원들끼리 약속한 것은) 각각 점처럼 독립적인 회사를 세우자는 거였다. 협동조합처럼 말이다. 기존 고용관계에 얽매인 회사와는 다르게 운영하자는 의미다. 그러나 앞으로 회사 방향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일어나 초기 멤버가 흩어지게 됐다. 그때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이 대표가 창업을 준비하던 때는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이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확신이 있었다. 가상현실은 현실을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또 증강현실은 모바일 기기 등 플랫폼(platform)이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 두 가지 장점은 이 대표에게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쿼트가 만들어낸 디자인은 다양하다. 기업 플랫폼을 사용한 것도 있고, 오픈소스(open source, 무상 공개 소스코드)로 나온 것도 있다. 사용하는 기술에 따라 플랫폼은 그때마다 달라진다.
“창업하면서 세운 목표는 확고했다. 상업 활동을 하면서도 의미있는 비영리 작업들도 많이 하자는 것이다. 상업적인 것은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디자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우리가 구축해놓은 기술을 가지고 사회적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좋겠다.”
◇ 사용자들이 ‘즐겁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쿼트는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디자인을 제공한다. 지난해 1월, 스포츠 업체와 증강현실 사업을 진행했다. 사용자는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미리 가방을 메어보거나 스포츠 물품을 착용해 볼 수 있다. 착용해본 모습을 SNS에 공유해 개인 룩북(lookbook)을 만들 수도 있다. 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도 쿼트 작품이다. 이군섭 대표는 사회 현상이나 게임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게임이 현실을 모방해 구현됐다면 이제는 현실이 게임을 모방한다. 문학이나 영화들도 게임에서 영향을 받는다. 어떤 캠페인이나 디자인 수주를 받을 때 게임 요소에서 영감을 받은 적도 있다. 어떤 특정한 게임을 꼽을 수는 없지만 게임 안에 있는 디자인 요소들이 아이디어를 준다.”
최근 SNS에는 이군섭 대표가 만든 ‘광화문 위를 떠다니는 고래’가 화제였다. 석정현 작가가 그린 ‘세월호 아이들을 태운 고래’ 그림을 증강현실로 구현한 것이다. 그 당시 예술가들은 광화문 광장에 나와 메시지를 전달했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미술가는 미술로 사회적 이슈를 표현했다.
이군섭 대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다. 그때 생각한 것은 증강현실. 피켓과 달리 물리적 영향력이 미치지 않고 손상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진실은 꺼지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표현하고 싶었다. 세월호 유가족과 광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의미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고래가 인상깊은 작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영상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많이 (세월호를) 기억해주는 것 같아 상업적 활동과는 다르게 미디어 예술가로서 의미가 있었다. 카카오톡으로 고래 이모티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상업 디자인은 의뢰인 요청에 따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군섭 대표는 사용자들이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고, 모두가 의미있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사회적 문제를 담은 미술작품과 디자인은 많았다. 이 대표는 그 연장선장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계속 할 것이다.
◇ 가상현실, 증강현실, 인공지능… 앞으로 시장 더 커질 것
이군섭 대표는 증강현실, 가상현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스타트업 창업 전에도 이 대표는 관심있게 이 분야를 살펴봤다. 이 대표는 하나의 기술로 물리적인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은 실제 세상을 재현할 수 있고 현실에서 벌어진 일을 표현할 수도 있다.
“앞으로 증강현실, 가상현실, 인공지능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지금 사용하는) 형태, 즉 모바일 기기나 VR기기 등 플랫폼 형태로 시작할 것이라고 본다. 쿼트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기술을 구축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 형태로도 만들 예정이다.”
이 대표는 쿼트를 ‘점’으로 표현한다. 점은 어디서든 연결할 수 있다,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면이 되는 것처럼 마지막에는 의미있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싶다는 것이다. 올해는 우선 방송사와 함께 진행중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이 목표다. 현재 기술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기술로 규모를 더 키우는 것도 장기적인 꿈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능력으로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둘 것이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인공지능 시장은 아무래도 국내 시장 크기가 작다. 앞으로 해외 시장 진출 또한 고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