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슬아의 취준진담

어머니는 25세 결혼했다. 지금 내 나이다. 어머니는 활자를 사랑하고 영민한 소녀였다. 할머니가 홀로 7남매를 키우느라 집안 형편이 퍽퍽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소녀 때부터 대학가지 말고 결혼하라는 권유를 지겹게 들어야 했다.소녀는 어느덧 슬하에 4남매를 둔 중년 여성이 됐다. 3년 전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지방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지난해 시인으로 문단에 진출했다. 중년 여성은 다시 소녀가 됐다. 어머니는 올해초 "벌써 네가 25세구나"라며 놀랐다. 당신이 결혼하던 때를 떠올린 듯하다. 아버지는 건설공사 현장소장이다. 건설업은 한때 남자의 로망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공사현장 숙소에서 살았다. 그러다보니 내 어렸을 때 한달에 아버지를 보는 날이 손에 꼽았다. 성실하고 단단한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요즘 술에 취하면 “외롭다. 그냥 내려가서 낚시나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이제 부모님의 서러움을 달래줄 나이가 됐나 보다.어머니는 여자라는 이유로 외삼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양보했다. 아버지는 남자라는 이유로 주말까지 공사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4남매 중 3명이 성인이 되고 나서야 취미생활을 즐긴다. 부모님 취미가 낚시와 책이라는 걸 안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50세를 지나 자기 취미를 되찾았다.여성에게도 교육과 사회 진출의 기회가 많았다면, 남성에게 임금 노동의 책임을 다 지우지 않았면 부모의 삶은 덜 고단하지 않았을까. 우리 세대는 다행히도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결혼하지말고 하고 싶은 걸 다하라"고 말한다. TV 프로그램은 욕망아줌마나 슈퍼맨처럼 일과 가정사에 모두 능숙한 이들을 등장시켜 부모 역할이 성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진 것처럼 연출한다. 부모 세대와 달리 젊은 부부는 맞벌이하고 가사노동을 분담한다. 그러나 여전히 성별은 고민거리다. 가정과 일을 다 챙기는 사례는 오히려 남녀 각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을 견고한 제도나 구제책은 없다. 오로지 개인 역량으로 돌파해야 한다. 행정자치부가 지난달 29일 전국 출산지도를 발표했다. 출산율 높이겠다며 243개 지방차지단체별로 가임기 여성 수를 공개하고 순위를 매겼다. 여성이 애 낳는 기계인가. 화가 난다. 정부는 성별분업을 재생산해 사회를 유지하고 싶은가보다. 복지를 늘리기보다 이쪽이 간편하다 판단한 듯하다. 부모가 행복을 유예해야하는 사회 속에서 자란 탓에 소년과 소녀는 부모 되길 망설인다. 자식이 부모처럼 살려고 할까. 아니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취미마저 20년 미룰 인내심이 없다. 삼포시대를 사는 청년이 무기력해 부모 되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부모의 서러움을 알기에 감히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꿈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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