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과 비교해도 남성위주 등 보수적 분위기 여전"

김성미 IBK기업은행 개인고객그룹 부행장. / 사진=기업은행

“여성으로서 부행장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능력으로만 승부를 봐야 했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현 정국으로 ‘여성 리더는 안 된다’는 인식이 커질까 걱정된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사회와 금융권에 퍼져야 한다.”

김성미 IBK기업은행 개인고객그룹 부행장이 금융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절박했다. 금융권은 다른 조직보다 보수적이다. 대기업군보다 여성 임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업무량도 만만치 않다. 여성이 견디기 어려운 업무 환경이다. 이런 금융권에서 능력 하나만으로 부행장 자리까지 올라온 김 부행장이다. 현 금융권을 바라볼 때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기업은행 개인고객그룹 부행장실에서 만난 김성미 부행장은 소문대로 패션 감각이 돋보였다. 큰 키와 은행원 같지 않은 화려한 옷 스타일. 소녀의 웃음까지 가졌다. 김 부행장 존재만으로 보수적인 은행에 변화가 있었겠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김 부행장은 “소문대로 스타일이 좋다”는 기자의 말에 마치 처음 듣는 듯 미소로 답했다.

김 부행장에게 은행원으로 지내온 과거를 물었다. 남자 임원이 대부분인 금융권에서 여성으로 부행장까지 왔기 때문이다. 주요 성과보다 개인 이야기가 궁금했다.

김 부행장은 “은행에 들어온 지 30년이 넘었다. 그때와 지금과 비교하면 그래도 여성들이 일하기에 좋아졌다고 생각했다”며 “밑에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데리고 있는 여성 직원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그래도 좋아졌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부행장님 전혀 그렇지 않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부행장은 “물론 업무 환경이 더 좋아진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다만 능력과 다른 무언가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여자들은 술로 친해지는 등에서는 남자보다 부족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금융권이 여전히 능력 위주의 업무 환경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김 부행장은 성과로 인정받고 이 점에서 남녀 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부행장에게 금융권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동력은 다른 것보다 '능력'에 있었던 셈이다. 

 

사진은 2015년에 열린 계좌이동서비스 시연회 및 은행권 협약식. 김성미 기업은행 부행장(첫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은 이날 다른 은행장들과 함께 참석했다. / 사진=뉴스1

김 부행장은 1982년에 입행했다. 기업은행 잠실트리지움지점장, 서초동지점장, 반월중앙지점장에 이어 남중지역본부장을 거쳤다. 특히 김 부행장은 반월공단 내 지점 중에서도 가장 실적이 좋지 않던 반월중앙지점에 들어가 6개월 만에 실적 1등기록을 만들어냈다. 공단 지점장을 여성이 맡은 전례가 없던 터라 금융권에선 ‘능력’만으로 승부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김 부행장은 승승장구했다. 2014년 1월 김 부행장은 기업은행 차세대 핵심부서인 개인고객그룹 부행장이 됐다. 이후 탁월한 업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년 만에 개인 핵심예금 2조원 돌파라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2015년 ‘나라사랑카드’사업권을 따내며 업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개인고객 부문 비중이 다른 시중은행보다 크지 않았음에도 국책은행으로서 사회공언사업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 결국 사업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기업은행이 군 복무 중 급여, 예비군 여비 등 입금계좌로 사용되는 체크카드를 10년 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행보를 본 기업은행 직원 중 김 부행장을 롤 모델로 삼는 여성 뱅커들이 있을 정도다.

김 부행장은 여성 은행원이 보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금융권은 남성 위주 등 보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부행장의 우려는 올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국내 주요 은행 중 부행장급 이상 여성 임원이 있는 은행은 KB국민은행 뿐이다. 금융권 여성 임원 수는 2013년 이후 증가세를 보였다. 2013년 국내 첫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이 취임 후 은행 여성 임원은 총 7명까지 늘었다.

올해는 KB금융지주 부사장으로 승진한 국민은행 박정림 부행장만이 여성 임원 중 눈에 띈다.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 김정원 부행장과 유명순 부행장도 각각 오는 3월 말과 5월 말로 임기가 끝난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은 올해도 부행장급 이상 여성 임원 없이 수익 사업에 나선다. 은행권 유리천장에 금이 가는가 싶더니 방탄유리로 바뀐 것이다.

김 부행장 임기는 오는 20일까지다. 새로운 행장 체제에 따라 임기가 다하면 자리를 물려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성 임원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며 “그래야 금융권도 변화한다”고 밝혔다. 바뀌지 않은 금융권 현실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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