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이는 지난해 호흡 곤란으로 두차례 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주치의는 폐이식 수술을 권유했다. 엄마 권미애(41)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날부터 날마다 악몽을 꿨다. 권씨는 “성준이 물건만 봐도 혹시라도 유품이 되는게 아닐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권씨는 지난해 5월 옥시레킷벤키저(옥시) 가습기살균제 피해 공식 사과 기자회견에 찾아와 오열했다. 권씨는 “만에 하나 성준이가 잘못되면 옥시 앞에서 분신자살하겠다”고 절규했다. 지난 6일 권씨는 다시 절망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가해자들을 솜방망이 처벌했다.
1심 재판부가 책임자들에게 내린 형량은 터무니 없었다. 신현우(69)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징역 7년, 오유진(41) 전 세퓨 대표 징역 7년, 노병용 전 롯데마트 사장 금고 4년 등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량에 권씨는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존 리(49) 전 옥시 대표는 증거불충분 등 사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11일 경기도 용인 기흥구 자택에서 성준이와 권씨를 만났다. 성준이 호흡기 줄이 집안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권씨는 인터뷰 내용을 성준이가 듣고 상처 받을까 걱정했다. 재판정에선 우는 엄마를 달래는 의젓한 성준이였지만 집에서 동생과 장난치는 10대 소년이었다.
2005년 퇴원할 때 위에 관을 꽂아 음식물을 공급했다. 목을 뚫어서 관을 꽂고 산소를 투입했다. 걷지 못해 재활치료도 받아야 했다. 말을 못해 언어 치료도 받았다. 골다공증이 심해 정형외과에 자주 들러 뼈 상태를 검사해야 했다. 한번은 다리 뼈가 부러진 적 있다. 성준이는 숨쉬기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뼈가 부러진줄도 몰랐다. 뼈는 어긋난 상태로 붙어버렸다. 너무 미안해 성준이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
지금 건강 상태는.
지금도 3개월 한번 정기검진 받고 있다. 갑자기 나빠질 때가 있다. 지난해 6월 호흡곤란이 왔다. 2004년 처음 입원할 때와 같은 증상이었다. 잘 자던 아이가 천식 증세를 보이더니 숨을 쉬지 못했다. 폐기능이 떨어지고 염증수치가 높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의사는 폐이식을 권유했다.
수술하면 완치 가능한가.
그마저도 어렵다. 성준이 폐 크기는 10살 아이 정도다. 이식 받을 수 있는 폐가 없다. 스물살까지 버텨줘야 맞는 크기의 폐를 이식 받을 수 있다. 수술 후에도 정상인의 폐는 아니다. 폐기능이 정상인의 50~70% 수준이다. 더 낮은 경우도 있다.
발병 당시 심경은.
성준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엄마 도와줘 ”라고 할 때 어미로서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성준이는 숨을 들이 마시기 힘들어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때는 속수무책이다. 어쩌면 성준이가 나보다 먼저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같은 시간을 보낼 때 성준이가 먼저 가면 따라갈까 생각도 들더라. 그럼 성준이 동생은 어쩌지. 별 생각이 다든다.
더 힘든 피해자들도 있다. 성준이가 15년 간 엄마 옆에 있었다. 아팠지만 웃을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떠나 보낸 엄마들은 성준이 보면서 쓸쓸하고 아픈 웃음을 짓는다. 그런 분들 앞에서는 힘들다는 말도 못한다. 그분들은 자기 자식들이 성준이처럼 옆에만 있었어도 좋았을텐데라고 말한다. 폐 이식 권유를 듣고 옥시 영국 본사를 찾아 갔다. 아픈 성준이를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고민했다. 하지만 한번은 찾아가 그들을 만나야 했다. 옥시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의 라케시 카푸어 CEO(최고경영자)를 만나 비공시적으로나마 성준이에게 사과를 받았다.
1심 선고는 어떤가.
선고 당일 법원에 가기 전 성준이와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 판사가 신현우에 징역 7년을 선고하자 눈물만 났다. 성준이는 지금까지 15년간 지옥에서 살았다. 성준이가 살아온 평생이다. 그런데 7년이라니. 너무 속상하고 답답해 법원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판사에게 따지고 싶었다. 성준이는 15년 생고생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반도 안되는 시간이라니 너무 화가 났다. 특히 존 리가 무죄를 받을 지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부 태도는.
기업 관계자들은 형식적이나마 사과했다. 검사들도 늦장 수사에 대해 사과했다. 국회의원 일부도 국민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했다. 유일하게 사과하지 않은 곳이 정부다. 자기가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하냐고 한다. 너무 화가 난다.
유해성 물질을 안전성 검사 없이 팔라고 허가한 이가 누구냐. 어떻게 책임이 없을 수 있나. 아무나 물건 만들어 팔 수 있는게 나라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불거진 게 5년 됐는데 얼마전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간 치약이 나왔다. 수 많은 아이들이 죽고 아픈데 그 성분을 또 팔고 있다. 제 정신인가. 그건 또 누가 허가한건가. 위험 물질을 자기들이 먼저 써 보라고 했으면 좋겠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게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는 무서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