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렌토 부식 3000건 발생했는데 소비자 탓?…“기아차, 글로벌 기업답게 행동해야”

서울에 사는 김세명(33·가명)씨는 2015년 6월 가족을 위해 생애 첫차를 구입했다. 차종은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기아차 쏘렌토. 가격은 3133만원이었다. 월급 280만원에 적지 않은 찻값이었다. 그러나 “많이 팔리는 차는 이유가 있다”는 영업사원 말 앞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구입 후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차량 시트를 벗겨보니 누런 녹이 가득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봤다. 같은 증상을 보이는 쏘렌토 차주만 족히 수백 명. 사측에 문의했더니 방청 작업을 해줄 수 있단다. 하지만 차량 인도 후 발생한 증상은 소비자 과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덧붙인다. 사과는 없다. 분노한 김씨는 쏘렌토 차주들과 함께 법적 투쟁을 결심한다.

박지혁(36) 변호사는 346명의 ‘녹 쏘렌토’ 차주와 손잡고 기아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굽힐 줄 모르는 기아차 앞에, 소송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박 변호사는 소비자 과실을 주장하는 기아차의 뻔뻔한 태도에 혀를 내두른다. 박 변호사는 “녹슨 차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심정을 기아차는 알아야 한다. 꼭 승소해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법률사무소 새빛 사무실에서 박지혁 변호사를 만났다.

◇ 소송 도화선은 기아차의 ‘모르쇠 답변’
 

2014년에서 2015년 9월 사이 생산된 기아차 SUV 쏘렌토 시트 프레임에서 녹이 스는 현상이 발생했다. / 사진=쏘렌토 부식 소송 커뮤니티

박 변호사가 소송을 시작한 건 2015년 10월이다. 쏘렌토 동호회에서 소송문의가 왔다. 시트 프레임에 녹이 슬었다는 동일한 증상을 호소하는 쏘렌토 차주만 3000여명에 달했다. 박 변호사는 차주들이 처음부터 법(法)을 바라본 건 아니라고 했다.

“차주들이 처음부터 소송을 원한 건 아니었다. 회사가 시트 부식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내놓으면 굳이 소송에 나서지 않겠다는 소비자가 더 많았다. 그런데 기아차 답변이 참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일부의 문제라는 거다. 그 일부의 녹도 소비자 탓일 수 있다더라. 수천 명이 같은 일을 겪었는데도 말이다.”

박 변호사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소송인단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소송 참여의사를 밝혔던 3000명 중 대다수가 중도 포기의사를 밝혔다.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시트를 분해해 프레임 녹을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 등, 과정이 복잡했던 탓이다. 결국 소송인단은 예상치 10분의 1 수준인 346명까지 줄었다.

“소송은 쉽지 않다.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부식을 증명하려면 차량을 분해해서 녹이 발생한 부분을 찍어야 한다. 그 뒤 정해진 양식에 따라 기록해야 한다. 족히 반나절이 소요된다. 그렇다보니 피해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10%가 참여했지만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 분들 모두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이다.”

◇ 가위도 녹슬면 바꿔주는데, 3000만원 자동차는…

기아차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쏘렌토 소송을 방어하고 있다. 기아차는 2015년 12월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시트 프레임에 일어난 녹은 기아차 잘못이 아니며, 방청 작업을 진행했기에 더 이상의 법률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차량 인도 후 확인된 부식이 제조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 같은 주장 앞에 박 변호사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박 변호사는 법을 떠나 “황당하다”고 했다. 상식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는 기아차가 수천만 원대 고가 제품을 파는 제조사로서의 책임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지혁 변호사는 기아자동차가 당장의 금전적 손해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박견혜 기자

“마트에서 단돈 만원짜리 가위를 샀다고 치자. 그런데 봤더니 녹이 슬었다. 마트에 녹슨 가위를 가져가면 당연히 환불이나 교환받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3000만원 SUV를 판매한 뒤, 녹만 살짝 제거해 줄 테니 타라는 태도는 잘못됐다. 제조과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데 차량 한 두 대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지 않나. 너무나 뻔뻔한 태도다.”

다만 박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녹이 슬었다는 결과만 놓고 기아차에 따질 생각은 없다고 했다. 문제는 원고수가 수 백 명에 이르다 보니, 모든 차주들의 피해 상황과 피해 정도, 구매부터 지금까지의 상세한 과정들을 일일이 증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자동차 소송이 참 어려운 게 피해사실 증명에 있다. 기아차도 이 점을 알고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기아차는 인도 당시부터 녹이 있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소비자들이 인도받고 바로 시트를 뜯어 내부를 확인하나. 다행인 건 인도 직후 녹이 슨 모습을 기록했다는 소비자 제보가 있었다. 제조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설히 보여주는 점이다.”

◇ 소비자 보상결정은 기아차에게도 해피엔딩

박 변호사가 처음 소송을 맡고 1년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당초 그는 소송 시작 후 6개월쯤이면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기아차는 “사회적 파장이 클 수 있다”는 이유로 소비자와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 이 탓에 의욕을 가지고 소송에 나섰던 소비자들도 지쳐가고 있다.

박 변호사는 최근 개인방송 플랫폼 등을 활용해 원고와의 소통 접점을 늘리고 있다. 원고들에게 실시간으로 소송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받고 있다. 박 변호사는 소송과 별개로 원고들의 ‘화’를 달래주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었다.

“자동차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피해자와 제조사 간 정보 비대칭이 발생한다. 회사가 계속 입증책임을 물고 늘어진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화가 날 수 있다. 소송의 이런 과정적인 특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소송인단 규모가 크다보니 오프라인으로 소통하기는 한계가 있다. 온라인으로나마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적인 부분까지 달래줄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려 한다. ‘소송이 잘못 되서 이렇게 길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아차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 ‘공룡’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박 변호사는 법을 방패삼아 보상을 회피해 낸다 해도, 기아차에겐 결코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했다. 기아차가 소송과 상관없이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태도를 보여야, 품질 논란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들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도, 없는 피해를 얘기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기아차가 이번 소송에서 져서, 소비자 한 사람당 수백만 원의 피해 보상을 하게 된다 치자. 기아차에게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아차가 소비자 입장에서 판단하고 선결적으로 대응하는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한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그에 맞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겠나.”

다음은 일문일답

기아차 쏘렌토 소송 의뢰 받게 된 계기는.

2015년 10월경이다. 시트에 녹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얘기가 커뮤니티 중심으로 나왔다. 소비자들이 처음부터 소송을 고려한 건 아니다. 기아차 측에 공식적 답변을 들어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기아차는 차량 일부의 문제일 수 있다며 본인 과실을 인정하지 않더라. 공식적인 답변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소송에 들어갔다.

2015년 당시 쏘렌토 한 달 판매량만 수 천대였다. 원고수가 생각보다 적다.

맞다. 현재 1차 192명, 2차 127명, 3차 27명까지 총 346명이다. 최초 3000여명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피해 입증 과정이 워낙 어렵다 보니 조금 줄어들었다. 그러나 10%에 해당하는 인원도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분들도 용기를 내 참여해 주신 분들이다. 감사한 일이다.

 

6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법률사무소 새빛 사무실에서 쏘렌토 부식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박지혁 변호사를 만났다. / 사진= 박견혜 기자
소송 시작하고 해가 두 번 바뀌었다. 재판 진행하며 느낀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소송단 규모가 크지 않나. 피해자가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 각각의 사례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번 쏘렌토 부식 사례의 경우 그나마 낫다. 똑같은 내용의 피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그런데도 기아차는 너무 무리한 수준의 입증까지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는 워낙 기술적인 부분이 많다. 피해자로서는 생산과정 등의 정보를 알 길이 없다. 피해를 입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아차가 차를 어떻게 만드는 지 모르지 않나. 피해결과만을 보고 추정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소송에서는 이 부분이 인정이 되는데, 기아차는 사회적 파장도 우려되다보니 다른 소송과 달리 증명을 더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기아차는 방청 작업 이상의 보상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녹이 발생한 건 소비자 과실이라는 거라고 주장한다. 차를 구매한 이후에 녹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300명의 모든 사람들이 인도당시부터 그걸 다 확인했어야 한다는 거다. 뻔뻔하다. 이거까지 입증해야 하나 싶다. 차 구매 후 1년도 안 됐는데 녹이 슬었다. 다행히 인도 당시부터 녹이 있었다는 제보자가 몇 명 있다. 결국 제조과정에서 하자가 있었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법이 친기업적이어서 대기업 소송에서 소비자가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법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문제는 판례를 보면 이런 (대기업 관련) 소송이 기각되는 게 굉장히 많다는 거다. 전문적인 분야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정보 비대칭 발생하기 때문에 입증책임이 너무 어렵다. 결국 확실한 내부자 고발 등이 없다면,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도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아프리카TV를 이용해 원고와 소통한 걸로 알고 있다.

원고 기분을 풀어주고 소송 진행 방향을 알려주고 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300명 정도 되다 보니 어렵더라. 처음에는 강당을 빌려서 설명회를 해야 하나 했다. 무엇보다 소송이 1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불만 갖는 소비자도 생기더라. 그래서 오해도 풀겸 소송에 관한 질의를 실시간으로도 받을 겸 개인방송을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이 주장하는 보상은 무엇인가.

무리한 보상이 아닌 시트 교환에 상응하는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 시트에 녹이 슬었기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정신적 고통도 고려돼야 한다. 리콜까지는 어렵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보상은 이뤄져야 한다.

기아자동차에게 바라는 점 있다면.

기아차는 소송에서 지면 파장이 크다고 얘기하는데. 원고 측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파장이 큰 만큼 선결적으로 대응을 해서 좋은 선례를 남긴다면 회사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역지사지 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기아차가 내수시장에서도 고전했는데, 품질 사후대응을 잘 하면 점유율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소송에서) 진다고 큰 일 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조금 더 넓은 시야를 지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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