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 중심 올해부터 도입 확대…노조 "팀별 협업 등 업무 특성 제대로 반영 안돼"

금융노조원들이 지난 12월 14일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폐지와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 사진=뉴스1

새해부터 막을 올리는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 준비가 부실하다. 성과연봉제를 적용하기 위한 새 성과평가 시스템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직원들은 사측이 내놓은 새 성과연봉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일부 금융공기업은 지난해 마지막 영업일인 지난달 30일까지도 직원 대상으로 새 성과평가 시스템 설명회조차 열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은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낸 성과연봉제 도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로써 기업은행은 새해 첫날부터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실시한다.

산업은행과 기술보증기금 노조도 법원에 성과연봉제 도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기업은행 노조가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산은과 기보가 낸 가처분 신청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변호사들 의견에 따르면 산업은행 가처분신청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본안 소송도 낸 상태"라고 말했다. 김봉근 기술보증기금 노조위원장도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금융공기업들은 사실상 올해부터 성과연봉제 도입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금융공기업은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의 의견 차이로 성과급 차등 지급 시기는 다르다.

금융위의 재량권이 있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올해중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위한 새 성과평가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에 따른 성과급 차등지급은 내년에 적용한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기재부영향권에 있는 금융공기업은 올 상반기에 새 성과평가시스템을 도입하고 하반기에 성과급을 차등 지급한다.

금융공기업 노조들은 산은·기은·수은의 경우 성과급 차등지급이 내년에 적용되지만 성과연봉제 적용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올해 도입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기 위해선 먼저 직원들의 성과 등급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성과 등급을 나누기 위한 작업이 새 성과평가 시스템 도입이다.

특히 금융공기업 노조는 금융위가 산은·기은·수은의 성과급 차등 지급 시기를 내년으로 지시한 것은 성과연봉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주 쟁점인 시급성을 없애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도권 산업은행 노조 부위원장은 "평가등급이 부여되지 않으면 임금 차등 지급은 작동할 수 없다"며 "금융위가 새해 새 성과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고 내년에 성과급 차등지급을 하라고 지시한 것은 사실상 은행 보수체계를 새 평가시스템에 맞춰 새해부터 작동시키라는 명령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시급성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성과연봉제 성과평가 시스템 도입 준비 미흡

금융공기업들은 당장 이번달부터 성과연봉제가 확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현재 성과연봉제를 적용하기 위한 새 성과평가 시스템 도입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다. 노조는 금융당국과 사측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성과연봉제 도입 동력을 더 잃기 전 급박하게 성과평가 시스템을 내놨다는 의견이다.

산업은행 사측은 새 성과평가시스템인 신(新)근무평정안을 만들었다. 신근무평정안에는 개별 팀원까지 한해 목표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종합근무평정은 한해 목표를 팀단위까지만 부여했다.

신근무평정안은 경력 평정도 폐지한다. 기존 근무평정에는 직급별로 경력 점수가 15~20점이 포함됐다. 신근무평정안은 경력 점수를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업적과 역량 부문만 평가한다. 신근무평정안은 이러한 내용을 보수 및 승진 등 보상과 연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러한 신근무평정안에 대해 산은 노조는 반대하고 있다. 이도권 노조 부위원장은 "신근무평정안은 산업은행 업무 특성에 맞지 않다. 팀 단위 업무가 많다"며 "개별 팀원까지 성과를 평가해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면 경쟁이 심화돼 팀 내 협업이 약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력 평정이 폐지되는 부분도 문제가 있다. 경력은 사내 정치력이 약한 직원과 하위 직급에게는 객관적 지표로 작용한다"며 "평가 공정성을 위한 장치도 실효성이 낮다. 목표설정은 관리자들이 설정한대로 해야할 가능성이 높다. 평가결과에 대한 항의도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은행과 기술보증기금은 아직 새 성과평가 시스템에 대한 직원 설명회조차 없었다.

기업은행의 새 성과평가 시스템은 개인평가를 4급 직원까지 확대한다. 기존에는 지접장급(2~3급)까지만 개인평가를 했다. 이에 기업은행 노조는 반대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 노조도 사측이 만든 새 성과평가 시스템이 기술보증기금 특성에 맞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봉근 노조위원장은 "한 기업에 보증을 하기 위한 평가를 할 때 복수의 인원이 투입돼야 한다. 서로 의견 차이를 좁혀가면서 합리적 결정을 한다"며 "그러나 사측의 새 성과평가 시스템은 기존 팀 평가에서 개인평가를 하려한다. 기보 업무 특성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 사측은 새 성과평가 시스템 도입이 노조와 합의 사항이 아니라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신근무평정안은 노조 합의가 없어도 도입할 수 있다. 노조가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신근무평정안이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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