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슬아의 취준진담

50대 남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대뜸 반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이력서를 훑었다. 느낌이 불길했다. ​난 주말 오전 7시 가게 문 열고 빵과 음료를 파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해 면접을 봤다. 얼굴에 상냥한 미소도 담고 빵 이름도 미리 외웠다. 


그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뱉어내듯이 말했다. “이화여대생을 몇 번 써봤는데. 노는 거 좋아하고 책임감이 없어. 학풍인 거 같아. 연세대생과 달라.” 으레 그랬듯이 불길한 직감은 맞아 떨어졌다. 개저씨 출몰.

나는 빵집 주인이 갖고 있는 내 모교에 대한 편견을 해명해야 했다. 무례한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노는 거 좋아할 거 같은데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어?” 불쾌했지만 면접 자리니 만큼 성실히 대답했다.

6개월 이상 일할 수 있냐고 묻기에 “예”라고 답하자 그는 “졸업했는데 취업 안 해”라며 미취업생의 아픈 곳을 저격했다. 어쩔 수 없이 취업이 늦은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나는 졸업요건을 갖췄으나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지박령(地縛靈·특정 지역에 머물면서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는 영혼)’으로 4학년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빵집 주인 눈엔 7년 전 지각이 잦은 이대생만 보이는 듯했다. 나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선배가 만든 빵집 주인의 삐뚤어진 편견 탓에 무책임한 이대생으로 전락했다. 미취업 지박령이 풍기는 불성실한 이미지까지 겹쳤으니 빵집 주인 눈엔 난 형편없는 아르바이트 지원자일 뿐이었다.

빵집 주인은 아르바이트 지원자를 알고 싶기보다 자기 편견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상대가 불쾌한 지 여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자기 말이 무례한 지도 모르는 듯했다. 편견이라는 내용물을 무례에 버물려 주변 사람에게 흙탕물처럼 튀기고 다니는 어른을 우리는 개저씨라고 부른다.

개저씨에게 백수는 문제아다. “왜 취업이 늦지?” 궁금함이 배제된 질문 앞에서 백수는 필사적으로 대답한다. 백수라고 해서 자기 삶이 무시당하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개저씨와는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일반화와 편견에 얼룩진 질문 폭력은 사양하고 싶다. 25분가량 지난 뒤 이 어이없는 면접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빵집을 나가자마다 나는 “저는 여기와 맞지 않네요. 다른 사람 구해보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소극적 저항이었다. 답장이 올까 무서워 사장 번호를 차단했다. 끝까지 속으로 끙끙 앓는 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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