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심의연기에 화랑 동시방영 중단 '충격'…중국측 선호 사전제작이 되레 중국리스크 키워

드라마 사전제작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한중 동시방영을 시작한 KBS2 드라마 화랑의 중국 방영이 돌연 중단됐기 때문이다. 사진은 2014년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2014) 모습. / 사진=뉴스1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國家新聞出版光電總局, 이하 광전총국)​의 사전심의 탓에 불가피하게 늘어난 드라마 사전제작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한중 동시방영을 시작한 KBS2 드라마 화랑의 중국 방영이 돌연 중단됐기 때문이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현실이 됐다는 말도 들려온다. 


사전제작이 중국 당국 필요에 의해 확산된 까닭에 본래 취지를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을 수출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한한령 국면에도 무풍지대로 비켜선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차디찬 12월을 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계는 화랑발(發) 충격에 휩싸였다. KBS2 드라마 화랑의 중국 방영이 26일 돌연 중단됐기 때문이다. KBS와 산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중국서 화랑을 방영하는 동영상 플랫폼 르티비(Letv)가 3회 방송을 앞두고 방영불가 방침을 KBS에 비공식적으로 알려왔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무성하던 한한령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크지 않으리라 전망하던 온건파 업계 관계자들도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현지 업계 사정을 전해 들었다는 한 문화산업 관계자는 기자에게 “화랑 때문에 (한한령이) 본격화하는 것 같다. 현지에 가있는 관련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엔터 뿐 아니라 소비재기업들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한한령을) 체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한령은 현실이다”고 밝혔다.

KBS도 직격탄을 맞았다. 화랑은 KBS 콘텐츠사업부가 기획부터 주도한 작품이다. KBS 관계자는 올해 초 기자도 참석한 한 강의 자리에서 “화랑은 KBS가 사전에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펀딩과 캐스팅까지 총괄했다. 그래서 KBS가 100% 권리를 가진 드라마”라고 말했다. 방점은 ‘100%’라는 단어에 찍혀있다.

올해 KBS는 3편의 사전제작 드라마(태양의 후예, 함부로 애틋하게, 화랑)를 시장에 내놨다. 이중 화랑을 제외한 두 작품은 제작사 측과 지분을 나눴다. KBS는 태양의 후예에 40%의 권리를 보유했다.

앞선 KBS 관계자는 “권리가 외주사에 있으니 KBS가 방송권을 외주사로부터 산 셈이다. 태양의 후예 같은 경우 사업적 수익은 적지만 광고가 완판 돼 다행”이라며 “절반이라도 KBS 권리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태양의 후예는 간접광고(PPL)로만 30억원을 거둬들였다.

따라서 KBS가 100% 권리를 가진 화랑은 흥행에 따른 수익이 오롯이 KBS의 계좌로 들어오게 돼있다. 그런 화랑이 석연치않게 동시방영이 중단되면서 KBS가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보게 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내수시장의 지상파 광고수익도 줄고 있다. 올해 상반기 지상파 TV 광고규모는 지난해보다 17% 감소했다. 김민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0조원 수준에서 성장이 정체된 국내 광고시장은 시청률이 높은 채널로 광고 물량이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종편과 케이블 채널의 광고 매출 상승은 지상파의 실적 부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오전 강원도 강릉 씨마크호텔에서 열린 '사임당, the Herstory' 기자간담회 모습. 당시 기자회견장에는 송승헌과 이영애를 취재하기 위해 모인 250명의 국내외 취재단들로 가득찼다. 하지만 중국 광전총국 심의는 올해가 끝나가는 지금 시점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 사진=뉴스1

화랑발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전제작이 되레 리스크로 비화할 조짐이다. 광전총국은 전체 촬영분을 심의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100% 사전제작 된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심의가 차일피일 미뤄져 결국 한중 동시방영이 사실상 불발됐다. 당초 이 드라마의 동시방영 예상 시기는 올해 9월~10월이었다. 제작사 그룹에이트는 일단 내년 1월 25일 국내방영을 먼저 시작한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 필요에 의해 도입된 사전제작이 본래의 장점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시즌제 드라마에서 보편화 된 사전제작은 쪽대본으로 대표되는 국내 제작환경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평가받아왔다. 미리 만들어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심산이다.

앞선 문화산업 관계자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사전제작 하다 보니 한류시장서 소구력 높은 배우와 작가, 캐릭터에만 치중하고 있다. 기획력은 떨어지고 값은 비싸다. 신인작가도 (기획력이 출중하면) 충분히 성공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스타작가, 스타PD, 한류스타를 총동원해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해서 그걸 다시 중국 투자로 끌어오는 구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방송가는 스타작가 모시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CJ E&M이 제작 자회사로 만든 스튜디오 드래곤은 아예 수백억 원을 들여가며 스타작가들이 속한 제작사를 통째로 사들였다. 이런 공세적 M&A 마저도 한한령 탓에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작가, 배우가 아닌 기술을 내세운 기업이 한한령 국면에서 무풍지대로 비켜서 있다는 점은 그래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술은 콘텐츠 개별 수출에 비해 리스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업체가 VFX(디지털시각효과) 전문기업 덱스터다.

덱스터는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중 당국 간 갈등이 표면화하던 9월에 영화 몽키킹3 관련 76억원 규모의 디지털시각효과(VFX) 공급계약을 수주했다. 적인걸2를 함께 작업한 서극 감독의 차기작도 덱스터가 VFX를 맡고 있다. 또 한한령 보도가 잇따르던 이달 19일에도 중국 알파픽쳐스로부터 영화 신과 함께와 관련해 25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밝은 한승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덱스터에) 사드는 없다”고 한 마디로 갈음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