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관계 대기업 동향 살피며 눈치보기 급급…정경유착 고리 끊어낼 의지 보여야

주요 시중은행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책은행들은 이미 탈퇴 러시에 동참했지만 시중은행들은 상황을 살피며 기업의 눈치만 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6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전경련 탈퇴를 약속했다. 구본무 LG회장 역시 탈퇴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지난 27일 LG는 4대그룹 중 처음으로 전졍련 탈퇴를 공식화했다. LG는 "내년부터 전경련 회원사로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며 회비도 납부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은 전경련에 내년 2월 총회에서 결정되는 회비를 내지 않겠다고 입장을 전달했다. SK는 탈퇴의사를 밝힌 후 실무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경련은 1961년 민간 경제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민간종합경제단체다. 주요 대기업과 업종별 경제단체로 구성돼 있다. 창립 당시 회원 수가 13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회원사 수는 600여개에 달할 만큼 국내 최대 경제단체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재벌의 입장만 대변하고 정경유착을 해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미르, K스포츠 재단에 주요 재벌 그룹들이 수백억 원을 후원하는 과정에서 전경련이 모금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해체 여론이 거세졌다.

이러한 전경련 연간 운영 예산은 400억원이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그룹이 내는 회비가 절반을 차지한다. 이들 그룹이 탈퇴하고 회비를 안내면 전경련은 존속이 어렵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산업은행은 이미 탈퇴절차를 밟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아직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탈퇴하긴 했지만 다른 시중은행들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도 같은 입장이다. 대기업 눈 밖에 날까 노심초사다.

앞서 국책은행이 전경련을 탈퇴한 건 공익을 추구하는 공공기관이 기업들의 친목, 이익 단체 회원사로 활동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들의 탈퇴 선언으로 국책은행도 탈퇴 명분을 찾았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2365만원을 회비로 냈다.

시중은행들은 그보다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한 해 수천만 원을 납부한다. 회원사로서 큰 이익을 보지 않아도 탈퇴를 고심하는 건 재벌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이고 이익을 추구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섣부른 탈퇴로 대기업과 거래 차질이 빚어질까 걱정하기도 했다. 은행들은 예나 지금이나 안정적인 대기업거래를 선호하고 전경련은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울타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민간 금융사도 엄연히 공익적 성격을 지닌다. 이를 무시한 채 수익 채우기에만 골몰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시중은행들은 지금이라도 국책은행들의 탈퇴에 동참해야 한다. 졍경유착의 장본인, 부패한 집단으로 낙인 찍힌 단체에 더이상 머물 이유가 없다. 대기업들의 탈퇴 본격화가 시중은행들을 움직일 수 있다.

시중은행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은행연합회를 통해 개진하면 된다. 어차피 전경련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대기업 마케팅을 위해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대신 당당히 입장을 전하고 투명한 금융사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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