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일째 이어진 폴크스바겐 소송, 힘들어도 후회 없어…“정부 기대지말고 소비자가 직접 무서움 보여줘야”

시속 100km로 달리던 차가 도로 복판에서 시동이 꺼진다. 아이를 태운 승합차는 갑자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기름이 새고 소음·진동 탓에 두통이 유발돼도 자동차사는 ‘모르쇠’다. 소비자는 치를 떨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다. 돈과 힘 있는 기업 앞에 피해 입은 차주 속만 타들어간다. 이 같은 ‘을’의 편에 서서 자동차사들과 당당히 맞서는 이들이 있다. 본 기획에서는 소비자를 우습게 여기는 자동차사들의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각계 전문가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455일이 흘렀다. 소송에 착수한 뒤 달력이 열다섯 번 뜯겼다. 손잡은 원고만 약 5100명이다. 다음달에는 400명이 추가 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시발점이 된 폴크스바겐 국내 집단소송 얘기다. 소송전선을 선두에서 이끄는 이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다.

자동차사와의 소송은 지난하다. 기술적 오류를 법리적으로 증명해내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은 탓이다. 특히 상대가 글로벌 기업일 땐, 소비자는 골리앗 앞 다윗 처지에 놓인다. 이 때문일까. 지난해 9월부터 아우디·폴크스바겐 차주들이 차량전면교체 및 손해배상을 외치고 있지만, 폴크스바겐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 변호사는 “폴크스바겐이 국내에서 소송을 길게 끌어가는 데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문제도 있다. 수많은 나쁜 선례들이 쌓이며 지금과 같은 폴크스바겐의 표리부동한 태도를 낳았다”며 “해가 두 번이 바뀌었지만 끈질기게 폴크스바겐의 태도를 바꿔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26일 강남구 삼성동 한 카페에서 하종선 변호사를 만났다.

◇ 폴크스바겐의 예고된 차별…정부가 기름 부은 꼴

예고대로였다. 배출가스와 연비를 속인 폴크스바겐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배상 아닌 리콜카드를 빼들었다. 차량 자체를 새것으로 바꿔달라는, 또 ‘거짓 제원’ 탓에 피해를 입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해달라는 소비자의 요구를 묵살했다.

하 변호사는 이들의 태도가 놀랍지 않다. 그는 정부가 폴크스바겐 ‘부역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환경부가 폴크스바겐에 강한 압박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폴크스바겐의 모든 요구조건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1년 째 폴크스바겐 차가 도로를 돌아다닌다. 배출가스를 기준치 이상으로 뿜어내고 있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졌지만, 환경부는 강제적인 차량교체명령 등을 내리기는 커녕 가만히 앉아 폴크스바겐이 내놓는 리콜안만 기다리고 있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고 있다.”

26일 강남구 삼성동 법무법인 바른 인근 카페에서 마난 하종선 변호사는.폴크스바겐의 지난 1년 간의 행태를 '안하무인'이라고 일갈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환경부는 지난 14일까지 폴크스바겐에 연료압력 문제에 대한 기술적 검토 자료와 리콜 개시 후 18개월 안에 리콜률 85%를 확보할 방안 등 2가지 내용을 담은 4번째 리콜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측은 자료제출 기일을 28일까지 미뤄 달라며 환경부 요구를 거부했다.

하 변호사는 환경부가 폴크스바겐에 지시만 할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폴크스바겐 차량품질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크스바겐이 제출한 리콜안은 연비와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차량 수명을 단축시키는 ‘눈 가리고 아웅’식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폴크스바겐 리콜 방안은 소프트웨어를 변경하여 연료압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즉, 연료분사방식을 스플릿 분사방식(split injection)으로 변경해 엔진에 투입되는 연료의 양을 줄이겠다는 복안인데, 이렇게 되면 차량 엔진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하 변호사 주장이다.

“미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차량 내구성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과 달리 환경부는 연비와 배출가스 부문만 점검할 뿐 그로인한 차량 성능 저하 등은 폴크스바겐 설명에만 의존한 매우 부실한 검증을 하고 있다. 당장 연비만 높이다가는 차량 수명이 단축되고 소유자들의 수리비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폴크스바겐의 악행을 정부가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 폴크스바겐 ‘표밀복검’ 당해선 안 돼…소비자가 두려움 심어줘야

하 변호사가 정부를 향해 연일 ‘날선 독설’을 쏟아내는 사이, 폴크스바겐은 예고 없던 보상안을 발표했다. 폴크스바겐 국내법인은 자사 차량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차량 유지보수, 고장 수리, 차량용 액세서리 등을 구매할 수 있는 100만원 상당의 쿠폰을 내년 2월 20일부터 배포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하 변호사는 이를 ‘꼼수 보상’이라 표현했다. 이미 자신이 지난 11월 경 폴크스바겐 본사 측에 제시했던 방안을 이제야 내놨다는 것이다. 당시 폴크스바겐은 하 변호사에게 “그럴 계획은 없다”며 보상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리콜검증안을 검토하는 시점에 맞춰, 이 같은 선심성 보상안을 내놨다는 게 하 변호사 추측이다.

 

지난 4월 12일 서울 삼성동 법무법인 본사에서 하종선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폴크스바겐 리콜방안의 기술적 딜레마 및 미국 환경청(EPA)의 전량 환불조치 가능성’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 사진=박성의 기자
그는 또 앞서 미국과 캐나다에서 시행한 보상안을 예로 들며, 이 보상안 자체가 한국 소비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일갈했다. 폴크스바겐은 캐나다에서 문제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에게 1인당 5100캐나다달러에서 8000캐나다달러(450만~710만원)까지 현금보상 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 1인당 5100달러에서 1만달러까지(605만~1187만원) 보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했다. 국내 보상안의 5~10배 수준이다.

“언론을 통해 수도 없이 얘기했지만 폴크스바겐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 이제와 내놓는 보상안이라는 게 자사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을 나눠주는 것이라니 얼마나 황당한가. 북미 소비자와 한국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는 같은 데 보상안이 다르다는 건 난센스다.”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1년 간 재판을 준비하는 사이, 하 변호사의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러나 그는 적당한 타협은 없다고 못 박았다.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을 끝까지 끌고 갈 셈이다. 상식을 뒤엎는 자동차사 논리 앞에 자신이 무릎 꿇는다면 앞으로 많은 자동차사들이 이 악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이 지난한 싸움에 무엇보다 소비자 도움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부도 법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자동차사다. 결국 이들에게 교훈을 주고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주체는 소비자다.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차량 할인 프로모션 등으로 소비자 환심을 사려할 때, 불매 운동 등으로 경각심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한국 소비자는 무섭다는 인식이 서지 않는다면 언제든 제2의 폴크스바겐이 나올 수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9월 시작된 소송전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한 과정인데. 지치지 않나.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한창 재판 준비로 바빴다. 몸살도 나고 그랬는데 그래도 올해 연말은 조금 여유로워졌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는 한다. 평일에는 온통 폴크스바겐에 신경을 써야 한다.

폴크스바겐 소송을 맡은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이미 시작할 때부터 길어질 것이란 걸 예상했다. 아마 내년에도 민사·형사소송 진행하느라 시간이 다 갈 것이다. 폴크스바겐이 쉽게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폴크스바겐이 최근 리콜안을 내놨는데.

엉터리다. 연비와 배출가스를 정상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일종의 편법을 쓴 것이다. 한 마디로 엔진에 연료를 더 세 개 분사해 연비를 높이는 대신, 차량 내구성을 떨어뜨리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차량 성능을 좌우하는 토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경부도 이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지 않을까. 관련해 폴크스바겐에 대책을 내놓으라 했다.

우선 연비 검증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환경부는 실연비가 폴크스바겐 표기한 수치에 5% 정도 오차를 보여도 리콜을 통과시켜 주겠다는 입장인데, 한번 속았던 소비자들은 연비가 실제 100% 수준으로 일치해도 이미 손해를 입었다. 5%는 가당치도 않다.

내구성 검증은 환경부가 직접 했어야 맞다. 가해자더러 알아서 문서로 제출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미국 정부는 자체적인 검증을 시행했는데, 환경부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폴크스바겐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100만원 상당의 쿠폰을 제공하기로 했다.

참 빨리도 했다. 이미 작년에 요구했던 것을 이제야 했다. 그 때는 거부했던 사안이다. 무엇보다 북미 소비자들과의 보상 방법이나 액수 차이가 너무 크다. 현금도 아니고 자기네들 제품을 살 수 있는 쿠폰이라니. 일종의 기만이다.

폴크스바겐에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즉각적인 차량교체명령이다. 리콜할 시간도 이유도 없다. 차를 바꿔줘야 하며,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보상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도 폴크스바겐도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에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사와 소송을 진행하며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기술적인 오류를 증명해내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또 국내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이 없어, 자동차사들이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제2의 폴크스바겐이 나오지 않으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친기업적인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소비자다. 문제를 일으켜도 할인해주면 사간다는 인식을 기업이 갖게 해서는 안 된다. 나쁜 교훈을 주게 되면 언제든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해 폴크스바겐이 할인행사를 진행하자, 판매량이 치솟기도 했는데.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때는 폴크스바겐의 악행이 이렇게 낱낱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폴크스바겐이 재인증절차를 거치고 리콜을 실시하더라도, 소비자들이 바로 차를 구매하고 열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 소비자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내년 폴크스바겐 소송 진행 방향은.

당장 다음달 400명 정도 원고가 추가된다. 소송인단 규모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에서의 판결결과가 국내 소송에 영향을 끼칠 것이기에, 매일 미국 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폴크스바겐과의 싸움은 내년 이맘때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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