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빌리은행 "빚 탕감 우편물 악용사기 주의해야"

지난달 25일 산와머니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 1063억원을 소각했다.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은 산와머니 채권 소각 대상자들에게 채권 탕감 사실을 우편으로 보냈다. 채무자가 빚 탕감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점을 악용한 사기 미수 사건이 일어나 주의가 요구된다. 사진은 채권 탕감 우편물의 한 예시다. / 사진= 이준영 기자

법무사 사무소 직원이 소멸시효가 지나 소각한 채권을 악용해 채무자에게 300만원을 갈취하려던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 대부업체들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주빌리은행에 무상 양도했다. 주빌리은행은 이번에 채권이 소각된 3만여명에게 지난달 31일 채권 탕감 사실을 우편물로 보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12일 대구에 사는 김모씨(40세·건설 일용직)는 주빌리은행으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다. 산와머니가 소멸시효가 지난 김 씨 채권을 탕감했다는 내용이었다. 원리금 1430만원 (원금 240만원)의 빚이 소각됐다. 

 

그러나 10여년간 빚 독촉을 받아온 김 씨는 이 우편물의 내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친분이 있던 법무사 사무소 직원 박모씨(가명)에게 문의했다. 김 씨는 "10여년간 빚 독촉을 받다가 탕감이라는 내용이 적힌 우편을 처음 받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법무사 사무소 직원에게 문의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김 씨가 채권 탕감을 인지하지 못한 점을 악용해 채권자와 채무조정해보겠다고 했다. 이후 박 씨는 김 씨에게 채권자와 300만원으로 채무조정하겠다며 자신이 알려준 통장으로 돈을 입금시키게 했다. 

 

김 씨는 배우자가 수술하고 받은 보험금 140만원을 보태 지난 15일 박 씨가 알려준 통장으로 300만원을 입금했다. 김 씨는 다음날 주빌리은행에 전화해 채무탕감이 완료됐는지 문의했다. 이에 주빌리은행은 법률사무소 직원의 사기 정황을 인지했다. 

 

박 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빌리은행에 따르면 박 씨는 김 씨의 빚이 러시앤캐시에도 있는 것을 알고 똑같은 수법으로 돈을 갈취하기 위해 김 씨로 사칭해 주빌리은행 홈페이지에 채무상담을 등록했다. 박 씨의 사기 행각을 인지한 주빌리은행 상담직원은 박 씨에게 지난 16일 전화를 걸었다. 박 씨는 자신을 김 씨로 사칭하며 주빌리은행 직원에게 김 씨의 러시앤캐시 빚이 탕감됐는지 확인 요청했다.

 

주빌리은행 상담직원은 박 씨에게 사기죄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이후 박 씨는 김 씨 배우자에게 주빌리은행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300만원을 돌려줬다. 

 

박 씨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박 씨는 기자에게 "김 씨가 채권 탕감 우편물을 가져왔을 때 빚이 사라졌다고 알려줬다. 300만원을 입금하라 한 사실도 없다"며 "김 씨로 사칭해 러시앤캐시 채무 탕감 확인을 물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씨가 김 씨로 사칭하며 러시앤캐시 채무가 탕감됐는지 물어본 전화 녹취록과 김 씨가 박 씨에게 돈을 입급한 내역을 입수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고금리 대출을 지적 받은 산와머니, 러시앤캐시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주빌리은행에 무상 양도해 소각했다. SBI저축은행도 23일 소멸시효가 끝난 채권을 소각했다. 이에 주빌리은행 관계자는 빚 탕감을 인지하지 못한 점을 악용한 사건이 일어나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빌리은행 관계자는 "소멸시효가 지난 채무자들은 정말 갚을 능력이 없어서 빚진 사람들이 많다. 일용직 등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며 "이들은 10년 넘게 빚 독촉에 시달리다 보니 빚 탕감 우편물을 빚 독촉 우편물로 오해하거나 제대로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를 악용한 사건이 발생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산와머니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 1063억원을 소각했다. 원금 기준 167억원으로 채무자 1만2000여명의 빚이다. 지난달 22일 러시앤캐시도 3174억원(채권 가치 환산액) 규모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주빌리은행에 무상 양도했다. 원금 기준 471억원으로 2만여명의 채권자들이 빚에서 벗어났다. SBI저축은행도 23일 소멸시효가 끝난 개인 채권 9445억원(원금)을 전량 소각했다. 대상자는 11만7100여명이다. 법인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 1조원도 내년 중 소각할 계획이다.

 

주빌리은행 관계자는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은 소각이 필요하다. 10년 동안 갚지 못한 것은 진짜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들은 대부분 생활비와 의료비 등 삶의 필수적인 이유로 돈을 빌렸다. 이후 신용불량자가 돼 은행, 병원 등을 이용하기 어렵다. 직장도 갖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소각해 이들이 정상적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빌리은행은 부실 채권을 매입하거나 양도받아 소각하는 시민단체다. 현재까지 소각한 채권 원리금은 6058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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