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바닥권 한국기업 지배구조…시대적 요구인 주주권 강화 외면 말아야

지난 19일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의 최종안이 발표되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강화를 통해 투자대상기업의 중장기적 기업가치를 제고함으로써 투자자와 기업 간의 상생을 모색코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이 코드의 철학과 원칙을 한국 자본시장에 착근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적 토양이 그리 비옥하지 않은 까닭이다. 

 

우선 한국경제에서 금융과 산업간 힘의 불균형 문제가 뿌리 깊다. 지난 50여년간 한국경제가 실물 주도로 성장하다보니 산업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높다. 또한 정치권과 재벌 간의 유착관계가 그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켰다. 즉 외환위기 이전에는 고위 권력층의 전화 한통화로 기업대출이 성사된 까닭에 은행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여신심사 기능은 유명무실했다. 이것이 한국 은행부문을 낙후시켰던 중대요인이다. 부실심사는 부실대출로 이어져 마침내 전통의 5대 시중은행들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자본시장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았다. 여신을 통한 차입에 더하여, 유가증권 발행을 통한 자본조달 방식이 활용되었다.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담론이 등장했다. 즉 투자자에게 있어서 기업의 투명한 지배구조는, 자금공여자의 채권확보를 위한 물적 담보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제도, 감사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각종 위원회의 도입, 집중투표제 등과 같은 관련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제도는 개선되었지만, 지난 10여년 한국기업들의 실질적인 지배구조는 오히려 퇴보했다. 올해 9월 ACGA 평가, 10월 IMF의 평가를 보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아시아에서조차 바닥권이다.   

 

필자는 그 퇴보의 원인분석을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의 당위성과 향후 과제를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즉 과거에는 내부 통제 위주의 법 개정 및 제도 도입에 치중했다면, 향후에는 그동안 취약했던 기관투자자들의 실질적인 주주권 행사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것이 지배구조의 한 축인 외부통제 기제이고 스튜어드십 코드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것의 당위성을 인지하고도 몇 가지 이유들로 좌절됐다. 산업계를 대표하는 재벌들의 로비, 그들을 대변하는 대다수 언론, 각계각층의 재벌 장학생들, 이들이 펼치는 왜곡된 프레임과 정보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강화는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을 높이고 한국 자본시장을 해외 투기펀드의 놀이터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프레임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마디로 왜곡됐다. 즉 기관투자자들의 적대적 주주권 행사는 쉽게 행사되는 싸구려 전략이 아니다. 큰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으로 현저히 저평가된 기업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행사된다. 

 

불투명한 기업들이 도둑 제발 저리 듯 볼멘소리를 낼 뿐, 떳떳한 기업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투명한 기업에게는 적대적 세력이 기웃거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또한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말하는 주주권은 투자대상기업과의 우호적인 관계 설정을 전제로 한다. 잘하고 있는 기업의 발목 잡으면 투자자에게 손해이고, 셈이 빠른 투자기관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재벌들이 정치권을 경유하여 은행을 사금고화 했던 시절이 지났듯이, 이제 자본시장에서도 소수주주들의 권리와 이익을 무시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정치권도, 정부도, 재벌도 이 시대적 변화를 직시하고 공동노력을 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는 비로서 조금씩 뿌리를 내릴 것이다. 

 

촛불시위가 함의하는 적폐청산은 자본시장의 문제도 포함되는 데, 그것이 바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고 투자기관의 스튜어드십 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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