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수익만 노린 불완전판매 횡행…전문성 제고·고도의 금융윤리 확립 절실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되고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해진다.

이 점은 금융사들도 마찬가지다. 고객들로부터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쌓아야만 안정된 성장이 보장된다. 

 

금융사들은 종종 실적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신뢰를 저버리는 때가 종종 있다. 중요한 정보를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금융상품을 판매하여 고객들의 민원을 자초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금융은 고도의 전문성과 복잡성을 띠고 있어 정보의 비대칭이 심하기 때문에 전문지식이 부족한 고객들은 불완전판매(mis-selling, incomplete selling)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과거 금융업무가 비교적 단순했던 시절에는 고객들이 금융상품의 장단점과 리스크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금융상품 설계시 위험 관리, 보장 제공, 고수익 창출 등 각종 부가기능이 곁들여진 다양하고 복잡한 금융공학적 기법들이 활용되면서 이들 금융상품의 속성을 이해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 결과 고객들은 금융기관이 상품의 성격, 비용, 현재가치, 숨은 위험 등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확한 내용을 모른 채 금융거래를 하였다가 손실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은행의 초기 역사를 보면 은행이 발행한 금보관증은 사실상 '금'과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은행이 인수한 어음(Banker’s Acceptance)은 현금과 같다고 보았다. 이처럼 금융업은 고도의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비즈니스였다. 그동안 금융기관들은 고객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해 왔다. 이들 금융상품은 무형적,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를 판매한다는 것은 결국 금융기관이 신용을 걸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단기수익만 노리고 불완전판매 등을 통해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거래행위는 스스로 무덤을 파면서 금융산업의 근간을 허무는 행위다. 그러기에 각국은 금융의 신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감독당국을 두고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영업행위를 감독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사들이 고객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파생상품들을 위험을 알리지 않은 채 고수익을 미끼로 판매하여 많은 피해를 입혔고 그로 인한 부실이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진 참사였다. 

 

미국 정부는 위기 수습 후 이를 판매한 금융사들을 고강도의 제재로 다스리고 있다. 지금까지 미 법무부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167억달러, JP모칸체이스에 130억달러, BNP파리바에 89억달러, 골드만삭스에 57억달러, 도이체방크에 140억달러 등 천문학적 숫자의 벌금을 부과했다. 아직도 바클레이즈, 크레딧스위스 등 대형 금융기관이 미 법무부로부터 제재를 기다리고 있다.최근에는 미국의 4대 상업은행 중 하나인 월즈파고은행이 2011년부터 150만개의 유령계좌를 만들어 영업실적을 부풀리고 신용카드 가입자의 동의 없이 수수료를 챙겨오다가  미 연방소비자금융보호국(CFPB)로부터 1억8천5백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로 인해 무리한 목표할당으로 불완전판매의 동기를 유발했던 CEO가 물러나고, 유령계좌 개설에 가담했던 직원 5300명이 해고되었다.

 

2009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 영국, 스위스 등의 주요 대형은행들이 불완전판매, 환율조작, LIBOR(런던은행간 금리) 조작 등으로 부과 받은 벌금총액은 3천억달러(약 340조원)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 모 재벌 증권사가 계열사의 부도위험을 숨긴 채 회사채를 판매하여 5만여명의 고객에게 피해를 입혔다. 지난해에는 일부 금융회사가 10만여 건의 보험상품을 불완전판매하여 계약해지 및 환급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영미법계 국가처럼 '징벌적 배상소송제도'(Punitive Damage Suit)를 도입하지 않아 강도 높은 금전적 제재는 부과하지 못했다. 

 

징벌적 배상제도는 '고의적'(Intentionally), '악의적'(Maliciously), 또는 '도를 넘는'(Grossly Reckless) 위법행위에 대해 배상규모를 넘는 벌금을 부과하여 처벌(Punishment)과 동시에 재발방지를 도모하는 제도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소비자의 신뢰에 반하는 행위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감독업무를 종종 금융기관의 영업과 창의성을 제약하는 족쇄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금융기관은 선수들이고 감독당국은 심판들이다. 무엇보다 심판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 세계 유수의 프로축구 리그에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심판들이 있다. 우리 금융기관들도 최고 선수를 지향해야 하고 감독당국은 최고의 심판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만한 실력과 권위를 갖추어야 한다. 

 

이번에 미 연방소비자금융보호국은 고객을 속인 월스파고은행에 벌금을 부과하면서 감독당국인 연방통화감독청(OCC)과 캘리포니아주 감독당국에 각각 3,500만달러, 5,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금융회사와 감독당국에 동시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금년 초 유럽연합(EU)은 '구제금융'(Bail-out)의 남발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채권자손실분담제도'(bail-in)를 도입했다. 금융기관이 부도위기에 처할 때 예금자와 채권자도 일정 부분 손실을 부담토록 한 것이다.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화에 금융기관의 잘못도 크지만 금융기관과 거래한 당사자도 위험을 간과하였거나 감수하고 거래한 데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고객들은 거래에 보다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금융사들은 그러한 고객들을 붙잡기 위해 거래의 투명성과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고객들에게 '화려한 약속' 보다는 '신뢰할 만한' 거래로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감독할 당국의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졌다. 

 

금융업은 다른 업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장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최종대부자(Last Resort)의 기능을 하는 중앙은행, 예금지급을 보장하는 예금보험기구, 다중의 감독기관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금융기관을 보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금융이 국가경제의 혈맥과 같은 기간산업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에 대한 '신뢰'(Trust)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이 신뢰를 저버렸을 경우 가혹한 제재가 따르게 된다. 

 

금융사들은 항상 고객, 시장, 감독당국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고도의 금융윤리를 확립하여야 한다. 나아가 고객으로부터 사랑받고, 감독당국으로부터 존경받는 금융회사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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