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와 이코노미를 합성한 단어 1코노미(1conomy)가 화두다. 소비자 분석 전문가로 잘 알려진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코리아 2017’은 1코노미를 주된 전개 축으로 삼았다. 혼자 모든 걸 해결하는 얼로너(aloner)가 출현할 거란 분석도 책에 담겨있다. 통계청은 이미 국내 1인가구 비중이 27.2%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017년에도 식음료업계는 황금시장 잡기에 진력을 다 할 모양새다.
◇ 혼자인 분, 이거 드세요
200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청와대에서 조리장으로 일한 한상훈 셰프는 한 언론에 나와 혼밥족 한명을 소개했다. 9일 국회서 탄핵소추 된 박근혜 대통령이다. 한 셰프는 박 대통령이 TV를 보며 홀로 밥 먹는 게 일상이라고 전했다. 이유는 달라도 올 한해 대통령처럼 홀로 끼니를 해결한 인구는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은 혼밥 시대의 1등 수혜주다. GS25, CU, 세븐일레븐 3강에 위드미, 365플러스까지 뛰어든 편의점 업계는 도시락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GS25의 경우 10월까지 도시락 매출이 180% 가까이 늘었다. 백종원 매콤불고기 정식은 CU의 최고인기상품 가운데 하나다.
덩달아 웃게 된 이들도 있다. GS25는 도시락 인기 덕에 올해 쌀 매입량을 크게 늘렸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에만 쌀 8500톤을 매입해 지난 해 1년 전체 매입량인 7800톤을 넘어섰고 올해 말까지 1만7000톤의 쌀을 매입할 계획이다. 통계청 자료를 감안해 계산하면 1만7000톤은 27만명이 1년 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도시락은 내년에도 1코노미 시대의 황제주 노릇을 할 가능성이 높다. 격화된 경쟁 덕에 갈수록 다양해지는 메뉴도 소비자 구미를 계속 당길 전망이다. 업계도 정크푸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재현 GS리테일 편의점 도시락 MD는 “GS25는 매년 당해 수확된 햅쌀을 사용해 다음 해 햅쌀이 나올 때까지 3일 이내 도정된 쌀만을 사용해 밥맛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편의점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경쟁력을 갖춘 외식 매장들이 본격 출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함께 먹는 음식의 대명사인 보쌈도 1인용 식단으로 나왔다.
지난여름부터 서울시내 대학가에는 ‘싸움의 고수’라는 1인 보쌈 전문 식당이 들어섰다. 4가지의 보쌈 메뉴를 제공하는데, 가격은 4000원에서 8000원에 불과하다. 편의점 도시락 가격이 대략 3400원에서 4800원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아니다.
아예 혼밥족을 겨냥해 내부 인테리어도 마치 바(Bar)처럼 꾸몄다. ‘쿡방스타’ 백종원 씨가 시작한 미정국수 역시 비슷한 인테리어로 방황하는 혼밥족을 붙든 바 있다. 내년에는 이 같은 1인 식당이 훨씬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메뉴도 보쌈에서 고기, 찜까지 다양해질 전망이다. 이미 CJ푸드빌의 제일제면소는 전국 9개 매장에서 회전식 샤브샤브를 1인메뉴로 구성해 혼밥족을 유인하고 있다.
혼밥족이 여전히 음식경제의 한가운데 공고히 서있는 가운데 내년에는 혼술이 산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단초는 마련됐다. 막걸리로 유명한 배상면주가 관계자는 “막걸리 잔 단위 판매 비중이 전체 매출의 20%에 달하며 점점 늘고 있다”고 밝혔다. 배상면주가가 만든 느린마을양조장&펍은 아예 막걸리를 테이크아웃 페트(PET)병에 테이크 아웃(Take Out)해갈 수 있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 간단해도 하찮은 건 싫어요! 간편식의 요리화
소비자 마음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간편한 걸 원하지만 하찮은 걸 바라지 않는다. 가정간편식(HMR)이 진화하는 까닭이다. 간편식도 R&D(연구개발)의 시대다. 목표는 요리에 가까운 제품을 만드는 거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CJ제일제당의 3분기 실적을 예로 들며 “가공식품은 판관비가 증가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비중이 계속 오르고 있어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동일한 수준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식품기업들이 품질 키우기를 통해 까다로운 소비자 마음을 파고들었다는 얘기다.
커진 산업규모가 이를 오롯이 증명한다. 2010년 7700억원이었던 간편식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7000억원으로 폭증했다. 올해는 2조원 돌파가 확실시 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 시장규모는 2조 5000억원도 겨냥해볼만 하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가히 간편식 전성시대다.
한발 앞서 시장을 선점한 업체들에게 간편식은 이미 캐시카우(Cash Cow)다. CJ제일제당 비비고 왕교자는 올해 매출이 1000억원을 넘었다. 1월 매출만 122억원에 달한다. 업계 안팎에서는 R&D(연구개발) 역량이 적중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CJ제일제당은 고기와 야채를 굵게 썰어 원물의 조직감과 육즙을 살린 기술을 적극 홍보해왔다. 외식매장 수준의 만두 식감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해온 셈이다.
라이벌 식품기업들도 몸이 달았다. 자산규모가 10조원에 달하는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은 아예 간편식 브랜드 이름을 ‘밥은 요리다’로 정했다. 찜닭 볶음밥, 닭갈비 볶음밥 등 기존 장점을 그대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라면업계도 1500원 안팎의 요리형 라면을 선보이며 시장 확장을 노리고 있다. 8월 나온 농심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은 4개월 간 300억원 어치 팔렸다.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특히 이런 제품들은 끼니를 때우기보다 간단하게나마 요리를 해먹고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며 “최근 SNS 공간 등에서는 간편한 제품들을 다시 본인의 레시피로 재조합해 올리는 글도 많아졌다”고 풀이했다. 당대의 문화적 흐름과 절묘하게 호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시적 흐름에 그칠 가능성이 적다는 해석이기도 하다. 내년에도 간편식은 우후죽순 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경쟁자가 늘었다는 점도 관심거리다. 고급의 대명사인 백화점이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진진바라’, ‘팬아시아’ 등 인기 외식매장과 손잡고 5900원~1만6000원 사이 간편식을 내놓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매장수와 메뉴 모두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간편식이 식품업계와 유통채널을 아우르는 새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