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번째 이야기

 

"결혼하면 인생의 반을 포기하고, 자식을 낳으면 그 반의 반을 포기하게 된다.”

어릴 적 엄마의 이야기. 그 이야기에 나는 절대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선언했다. 그리고 스물다섯, 그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고, 3년 후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를 낳았다. 그 후 아이가 두 돌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로서 살았다. 

 

그제야 엄마의 해묵은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됐다. 건강하게 아이를 키워냈지만, 서투른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는 삶을 잃어버렸다는 우울증을 낳았다. 상처 입은 마음에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과 틈이 벌어졌다. 우린 이혼을 말할 만큼 위태로운 상황까지 놓이게 됐다.

 

왜 그랬던 걸까. 보통 대부분 사람들이 30~40대에 결혼한다. 일터에서 일을 많이, 또 열심히 해야 하는 시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당시 남편은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밤낮으로 주말까지 일했다. 아이 낳고 출산휴가 사흘 썼을 때, 남편 회사 팀장은 “나 때는 안 그랬어”라며 구박과 눈치를 줬다고 한다.  

 

남편은 그런 조직에서 바쁘게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남편은 점점 회사원으로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호소했다. 초보아빠라서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잘 몰랐고 육아에 지친 아내의 푸념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회사에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계속 야근했고 근태관리에 신경썼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와 피곤함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인사팀에 임신기간만이라도 다른 부서에 일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임신한 직원은 더 이상 회사에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뒤 1년 넘게 아이를 키우며 남편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본연의 나로 살기 어려운 우울감을 극복하고 다시 일하고 싶은 의지가 컸다. 그렇게 난 워킹맘이 됐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 친정엄마는 소중한 저녁 시간을 희생해주셨다. 친정과 집이 멀어 출퇴근길이 길어지다 보니 한겨울에는 보금자리를 놔두고 아이와 둘이 친정살이까지 하게 됐다. 남편과 서로 함께 있고 싶어서 시작했던 결혼생활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점점 몸도 마음이 멀어져 가야 했다.

 

시간이 흘러서 아이가 자주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다. 친정 근처로 집을 옮기고, 조금씩 본연의 나를 찾아가고, 차츰 부부가 서로의 속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다시 생기면서 지난 비정상적인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여전히 지금의 삶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요즘은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주고, 가끔씩 서로에게 엄마 휴가, 아빠 휴가 같은 자유 시간을 준다. 짧지만 종종 둘만의 시간도 보내고 있다. 지금은 다시 서로 사랑한다고 믿게 됐다. 부모로서의 나, 여성으로서의 나, 본연의 나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 우리 부부가 위기의 순간까지 겪었던 건 단지 두 사람의 마음이 문제였을까. 꼭 나만의 이야기일까.

 

임신이 더 이상 경력단절의 위험요소가 되지 않고,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출산 전 그 역할을 제대로 배운다면, 세종대왕도 100일이나 주셨다는 출산휴가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고, 남편도 필요할 때 육아휴직을 쓸 수 있으며, 아이 키우는 과정에서 모든 부모들이 필요한 상황에 안심하고 돌봄을 맡길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저출산 문제도 많이 해결될 듯하다. 

 

우리 주변의 엄마와 아빠들이 본연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부모로서 역할과 한 사람의 여성, 남성으로서 삶을 지켜가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육아를 잠깐이라도 도와줄 수도 있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고, 본연의 나를 떠올릴만한 선물이나 자유시간을 주는 것도 좋다.

 

앞으로 결혼생활이 인생의 무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난 최선 다한다. 결혼도 그리고 내 삶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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