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안 맞는 진술로 책임 축소 의혹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받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바라보고 있다. / 사진=뉴스1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콘텐츠 관련 연설문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차 전 단장은 비선모임은 없었다고 말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내놨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본인 책임을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청문회 전반부에서는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의원들 관심이 쏠렸다. 정작 증인 대표로 선서한 차은택 전 단장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차은택 증인’을 호명한 여야 의원들은 그에게 누구 소개로 김기춘 전 실장을 만났는 지만 반복적으로 물었다.

이에 차 전 단장이 2014년 당시 최순실 씨 소개로 김 전 실장 공관에 가서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과 함께 10분 면담했고 당시 자리에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되풀이 대답했다. 지루한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언론 보도 이상의 새로운 논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흥미로운 풍경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인 최교일(54) 새누리당 의원이 차 전 단장에게 “논현동 사무실에서 비선 모임 가진 적 있나”라고 물었고 이에 차 전 단장은 “전혀 없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거짓말이다”라고 답했다.

이에 최 의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고영태(40) 씨에게 관련 사실 여부를 똑같이 물었다. 이에 고 씨는 “이성한 씨에게 모임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다만 나는 그 모임에 간 적은 없다”고 엇갈리는 진술을 내놨다.

다소 당황한 차 전 단장은 최 의원이 발언권을 주지 않았는데도 나서 “미르재단 관련 회의를 가진 적은 있다. 하지만 비선실세 모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논현동 모임은 있었지만 미르재단 회의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차 전 단장은 “그런 모임은 보지 못했고 연설문 관련해서 (국정에 관여한) 경험은 있다. 최순실 씨가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해 몇 개 정리해달라고 해서 써줬다. 어느 날 그게 대통령 연설문에 포함돼 몇 문장 나왔다”고 답했다. 즉 차 전 단장은 비선실세 모임은 없었지만 대통령 연설문에는 관여했다는 논리를 내놓은 셈이다.

차 전 단장은 청문회 내내 본인 행위는 인정하되 그 의미를 축소하려 했고 책임을 최순실 씨에게 최대한 돌리려 애썼다.


차 전 단장은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 실소유주가 최순실 씨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범계(53)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답하면서 “플레이그라운드 실소유주가 최순실 씨다. 직접 관여한 부분은 없고 최순실 씨가 추천해달라는 인물을 추천해준 거 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만희(53) 새누리당 의원이 플레이그라운드 대표인 김홍탁 씨와의 관계를 묻자 “업계서 알게 된 지인”이란 표현을 하면서도 본인의 역할론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기획 출신인 김홍탁 씨는 업계 안팎에서 차은택 사단으로 불린다. 광고기획, 문화콘텐츠 제작 등을 수주하는 모스코스 역시 김홍탁 씨가 대표지만 차 전 단장이 실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또 차 전 단장이 KT 인사개입 부분은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플레이그라운드 역할론을 축소한 점도 논란거리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황창규 KT회장에 연락해 전무급인 ‘브랜드지원센터장’으로 추천한 이가 차은택 씨 측근인 이모씨이기 때문이다.

이어 안 전 수석은 이 씨 등을 광고업무 총괄 직책으로 변경하라고 요구했고 플레이그라운드라는 회사가 정부 일을 많이 하니 KT의 신규 광고대행사로 선정해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즉 차 전 단장은 본인과 본인 측근이 연결고리로 광고를 수주한 업체인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역할은 없었다는 진술을 내놓은 셈이다.

또 차 전 단장은 은사인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외삼촌인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지인인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추천 역시 최순실 씨가 먼저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관 추천 요청은 (최순실 씨와) 만난 지 한두 달 지나고서 얘기가 나왔다. 수석은 그해 10월~11월, 송성각도 거의 비슷한 시기다”라고 답했다. 이에 김경진(50) 국민의당 의원이 “최순실씨가 다른 분야고 그렇게 장관감을 알아보고 다녔을 가능성”을 묻자 차 전 단장은 “추정해서 말하기 힘들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며 여지를 열어뒀다.

차 전 단장이 여러 분야서 본인 역할을 축소 주장했지만 차 전 단장 후임으로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을 맡은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 말은 달랐다. 여 위원장은 “전 부단장은 차은택 전 단장이 명예단장으로 일하는 거라고 말했다던데”라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수시로 그렇게 들었다. (구조나 사업체계 등을) 바꾸지 말라는 명령을 장관과 수석으로부터도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여 위원장은 “차 전 단장은 내가 나간 후에도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더라. 내부 영수증이나 사업계획서, 부실한 행정절차를 모두 검토한 결과 차 감독, 김종덕 장관, 문화창조융합벨트 간부들,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교육문화수석실이 모두 한 팀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며 “합법을 가장해 구조적으로 국고가 새어나가게 했다. 한 국가의 정신을 난도질하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