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책임 회피용 답변 일관…미래전략실 해체·전경련 탈퇴 약속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착잡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 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첫 공개 검증 무대가 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말 돌리기 및 답변 회피 등의 태도로 의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삼성-최순실-박근혜' 삼자 거래 의혹에 대해선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했다. 향후 법적 논란이 있을 부분에 대해 고의적으로 회피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야당 의원들로부터는 '박근혜 대통령 수준'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08년 삼성특검 당시 약속한 전략기획실(현 미래전략실) 해체를 실천하라'는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오늘 미래전략실에 대해 질타와 부정적 시각이 많은 것을 느꼈다. 창업자이신 선대 회장(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만든 것이고 (이건희) 회장께서 유지를 해온 것"이라며 "국민들이나 의원들이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면 없애겠다. (아버지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아울러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를 요구하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요구도 받아들였다. 그가 탈퇴 의사를 밝힌 후 최태원 SK 회장 역시 탈퇴 의사를 전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전경련의 대대적인 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의원들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대가성 추궁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삼성물산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기 때문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및 최순실씨 지원 등도 대가성과 관련없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논리였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합병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는 의원들의 추궁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양사 합병이 제 승계와 관계 없다"며 "지켜봐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두 차례 독대와 관련해선 "문화융성과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 기업들이 지원해주는 게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니까 아낌없이 지원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독대 당시엔 정확하게 재단 및 출연 얘기가 안 나와서 무슨 얘기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지원 요청이 오지만 저희는 단 한 번도 대가를 바라거나 반대급부를 요구한 적이 없다. 이번도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재벌 총수들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게이트 국조특위 청문회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날 청문회엔 재벌 총수 9명이 출석했지만 질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중됐다. / 사진=뉴스1

 

하지만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합병과 최순실 별도 지원 의혹 관련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해선 '사후 보고만 받았다'거나 동문서답식의 답변 회피로 의원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검찰과 특검에서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만 답변을 피해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씨 존재의 언제 처음 알았는지를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오락가락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는 최씨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시점에 대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아주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280만 유로(약 37억원)를 송금했던 지난해 8월에도 최씨와 딸 정유라씨 존재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씨의 존재가 박근혜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 2014년 12월에 터진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였다. 이 부회장은 "매일 신문을 보고 있다"면서도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선 "들어본 것 같다"고만 답했다.  의원들이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당시 최순실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던 것을 국민들이 믿겠냐"고 따져 묻자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부족한 점은 굉장히 많다"고 또다시 회피성 발언을 했다. 이에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들은 이 부회장이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나"고 힐난했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삼성이 19억원 상당의 말을 왜 지원했느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구체적 답변 대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들었다"면서도 구체적 내용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이어 '사준 것이냐'는 질문에는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았다"면서도 "사실관계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삼성의 최씨 측에 대한 별도 지원에 대해선 "미래전략실의 판단"이라며 "문제가 되고 나서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의 구체적인 반박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만 답했다. 

 

그는 '최씨 측 지원을 위해 독일로 돈을 보낼 때 최종 결재권자가 누구냐'는 의원들의 계속된 추궁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본인이 결정한 것이냐'는 '삼성 저격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추궁엔 '예, 아니오' 등 구체적 답변 대신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이 부회장은 심지어 당초 증인으로 유력했던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여야 간사 협의 과정에서 빠진 부분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편법 상속 지적에 "앞으로 기업활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답해 박 의원으로부터 "동문서답하지 말라"는 면박을 받기도 했다. 

 

이에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이 수백억원의 돈을 아침마다 만나는 사람에게 보고하지 않고 자의로 집행했다면 이 부회장을 왕따 시킨 것"이라고 힐난했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도 "이 부회장 대답을 보면 무능하거나 국민을 우롱하는 수준"이라며 "오늘 대답 수준을 보면, 기분 나쁘겠지만, 박 대통령 수준이다. 삼성 직원들에게 탄핵받을 수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 답변 방식은) 변호사로부터 배임죄로 걸려들 수 있으니까 모른다고 하라고 조언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속된 의원들의 비판에 이 부회장은 "제 책임이 있다면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억력이 좋은 것 같지 않다. 기억력이 더 좋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는 박영선 의원의 지적에는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넘기겠다"며 "제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우수한 분들을 모시는 것이다. 저보다 우수한 분들이 있으면 다 넘기겠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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