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동이 자리 비켜달라 했다"…K-컬처밸리 관련 의혹은 '유야무야'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 사진=뉴스1

 

손경식(77) CJ그룹 회장이 조원동(60)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이미경 부회장 퇴진압력 사실을 청문회장에서 공식 확인했다. 군부 정권 때나 유사한 일이 있었다는 표현도 있었다. 차은택(47구속기소​) 전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이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요구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 특혜 의혹을 문제 삼는 K-컬처밸리와 관련해서는 유의미한 질의응답이 진행되지 않았다. 청문회 시간 대부분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로 쏠렸기 때문이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청문회에서 손경식 CJ회장의 발언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주연 1인과 조연 8인이라는 세간의 예측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10번째 질의자였던 김경진(50) 국민의당 의원이 처음으로 손 회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김 의원은 손 회장에게 2013년 하반기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과 통화한 사실이 있는 지를 물었다. 이에 손 회장은 “만나자 해서 직접 만났다. (조 전 수석이) 이미경 부회장이 조금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이 정권에 의한 외압설을 전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 생중계 자리에서 확인해준 순간이다.

김 의원이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의 구체적 뜻을 묻자 손 회장은 다시 한 번 “회사를 떠나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로 들었다)”라고 못을 박았다.

손 회장은 조 전 수석과 통화를 두번 한 이유도 밝혔다. 앞서 조 전 수석은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CJ측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손 회장은 “당사자 이미경 부회장이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하실 리가 없다고 그래서 (조 전 수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또 김 의원이 “대통령이 민간기업 부회장에게 그만두라 한 이유를 파악 못했나”라고 묻자 손 회장은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럴 리가 있겠나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에 김 의원이 “이유를 내부 분석한 적도 없나”라고 재차 묻자 “경솔한 추측은 할 수 없다”면서도 “조 전 수석이 정확히 말해줘야 하는 데 말이 없으니 더 알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다만 손 회장은 이미경 부회장이 그해 9월 말 미국으로 건너가 CJ그룹의 글로벌 사업 관련 일들을 맡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무에서 물러났다는 해석과는 선을 그은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이후 이미경 부회장이 CJ의 글로벌 사업에서 눈길을 끄는 움직임을 보인 적은 사실상 없다. 다만 이 부회장은 CJ의 대표적인 글로벌 사업인 ‘2016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MAMA)’에 지난 2일 전격 참석했다. 청문회를 4일 앞둔 시점이라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또 손 회장은 이 같은 대통령의 압박이 자유민주적 시장경제질서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라는 김 의원 질의에 “과거 군부 정권 때는 이런 경우가 좀 있었다고 알고 있다”며 “흔한 일은 결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부회장 퇴진 건과 차은택 씨 연루설이 더 폭발력 있던 사안인 탓에 특혜 의혹을 받는 K-컬처밸리 건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 사진=시사저널e

 

또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이 무엇을 요구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맡고 싶다고 해서 우리 직원이 거절했다”고 답했다. 실제 차은택 씨는 관련 직책을 얻지 못했다.

손 회장은 대통령과 2번 독대했다고 밝혔다. 내용을 묻는 김 의원 질문에 손 회장은 “정부가 문화산업을 주요 정책으로 정한 다음이었다. CJ가 문화사업을 많이 (진행)하니 열심히 해달라는 격려를 들었다”고 대답했다.

이 부회장 퇴진 건과 차은택 씨 연루설이 더 폭발력 있던 사안인 탓에 특혜 의혹을 받는 K-컬처밸리 건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청문회 시간 대부분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쏠려 손 회장에 대한 관심도가 지극히 적었던 점도 원인이었다.

앞서 9월부터 경기도의회는 경기도가 CJ E&M 컨소시엄에 특혜를 줘 고양시 장항동 K-컬처밸리 용지 23만7401㎡를 공시지가(830억원)의 1%에 불과한 8억3000만원에 빌려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도의회는 기본협약을 하면서 도의회 보고와 동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며 행정사무조사까지 발동시켰다.

K-컬처밸리는 CJ가 신한류 육성을 명분삼아 고양시 한류월드 부지에 만드는 공간이다. 보도 초기에는 한국판 ‘디즈니랜드’라는 낯 뜨거운 수사까지 나왔었다. K-컬처밸리의 상위 사업 격인 문화창조융합벨트는 한류 거점을 내세웠다.

당장 문화계 안팎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에 정확히 발을 맞췄다는 해석을 잇달아 내놨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는 기공식에 맞춰 홍보관을 개관했고 손경식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K-컬처 밸리 사업구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직접 기공식에 참석했었다. CJ가 정권의 핍박만 받은 기업이라는 세간의 평과 달리 경기도의회 등 일각에서 특혜 의혹을 문제 삼고 있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손 회장은 K-컬쳐밸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이 투자할 예정”이라고만 답했다. 유야무야 질의가 끝나버린 셈이다. 때마침 의혹을 파헤쳐 온 경기도의회도 유의미한 조사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모습이다. 결국 특혜 의혹은 특검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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