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번째 이야기

 


11월 26일. 평소 같았다면 전기장판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보냈을 토요일이다. 내복을 껴입고 마스크를 챙겨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버스들로 가득 찼다. 제주도에서는 비행기 3대가 광화문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가득 채워 날아왔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이 더럽힌 정의를 지키기 위해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주말을 반납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다.

분노한 사람들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기 바로 전날, 목소리에 금을 낸 논란이 일었다. 시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신곡 2개가 도화선이 됐다. 산이의 '나쁜 X', DJ DOC의 '수취인분명'이 그것이다. 이들 가사가 여성혐오라는 문제가 제기됐고,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결국 예정됐던 DJ DOC의 광화문 공연은 그렇게 무산됐다.

DJ DOC가 작사했다는 수취인분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잘가요 미스박 세뇨리땅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문제가 된 건 '미스(Miss)'라는 단어. 한국사회에서 미스는 그 단어만으로 성차별적인 함의를 지닌다.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로는 결혼여부에 상관없이 ‘미스터(Mr)’ 하나다. 다만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는 기혼일 경우 ‘미시즈(Mrs)’와 미혼일 경우 ‘미스(Miss)’로 나뉜다.

여성의 사회적 호칭은 남성과 다르게 기혼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오랜 논란에 현재 영어권 국가들의 정부, 국제기구 등에서는 여성에 대한 호칭으로 ‘미즈(Ms)’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미스'는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평등을 외치는 광장에서도 말이다. ‘미스터박’과 달리 ‘미스박’ 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문제가 된다.

‘미스박’은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수많은 권력형 비리들을 겨냥하지 못한다. 오직 박근혜 대통령의 여성성에만 돌을 던지는 행위다. 부패한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간 수많은 여성들이 미스박이라는 노래를 같이 부르며 분노할 수 있을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간 광화문 광장에서, 우린 미스박이라는 구호를 같이 외치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이런 불편함이 불편한 누군가가 있다면 말하고 싶다. 분노는 비하를 정당화할 수 없다. 국민 100만명은 왜 광장에 모였을까. 우리는 부패한 박근혜 정권에 분노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모였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대통령이 아닌 일개 측근이 사유화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했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공감이 우리를 광화문으로 불렀다. 그리고 개개인이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가치에 여성혐오는 위배된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조롱이 정당화되는 순간, 그 약자는 우리 사회 누구도 될 수 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2년 대선 기간 당시 개혁당 성폭행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여성회의 활동에 대해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는 발언을 했었다. 누군가는 하루빨리 박근혜 정권을 타도해야 하는 이 중대한 순간에 사소한 여성혐오 문제를 제기해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유별나다고 손가락질 한다. 무엇이 해일에 맞서는 행위이고 무엇이 조개를 줍는 행위인지를 구분짓는 건 과연 누구의 잣대인가. 난 이번 주말에도 광장에 나가 민주주의를 외칠 것이다. 그리고 여성혐오라는 해일에 맞서 나는 오늘도 조개를 줍겠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