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삼성물산 주가 낮추려 '소극 경영' 의심…국민연금도 적극개입 의혹

민주노총 일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30일 '박근혜 퇴진·시민불복종 총파업' 집회를 마친 뒤 서울 태평로2가 삼성 본관에 삼성물산 합병 의혹을 규탄하는 벽보를 붙였다. / 사진=뉴스1

 

삼성물산 합병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불공정 합병 논란을 야기한 데 이어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엮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의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될 가능성도 있다. 논란의 근본 원인은 불공정한 합병비율이다.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은 지난해 5월 26일 각각 개최한 이사회에서 두 회사의 합병을 결의하고 이를 공시했다. 제일모직이 구 삼성물산을 합병한 후 상호는 '삼성물산'으로 하는 내용이었다. 시장에선 두 회사 간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총수일가가 42.19%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을 통해 구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06%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해석이다. 총수일가가 보유한 구 삼성물산 지분은 1.41%에 불과했다. 결국 제일모직 가치가 더 높을수록 합병회사의 총수일가 지분은 높아지는 구조였다. 

 

삼성은 두 회사 간 합병비율을 '제일모직 1 : 구 삼성물산 0.3500885'로 정했다. 보통주의 경우 제일모직 합병가액이 15만 9294원, 구 삼성물산이 5만 5767원이었다. 삼성은 금융투자업법 시행령에 따라 산출된 합병비율이라고 설명했다. 시행령 176조의5에 따라 이사회결의일과 합병계약 체결일 중 앞서는 날(이 경우는 둘 다 5월 26일)의 하루 전인 5월 25일을 기산일로 했다고 삼성은 밝혔다. 이어 기산일 이전 최근 1개월 가중산술평균종가, 최근 1주일 가중산술평균종가, 최근일 종가를 산술 평균한 가액으로 기준가액을 산정했다고 전했다. 삼성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을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보통주에 대해 각각 15만 6493원과 5만 7234원으로 정했다.

 

이 같은 합병 계획이 발표되자 구 삼성물산 3대 주주였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을 비롯해 일성신약 등 소액 주주 일부가 거세게 반발했다. 핵심은 합병비율이 구 삼성물산에 매우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경영 성과 등을 놓고 봤을 때 합병 기준 주식 가치가 과도하게 평가절하 돼 있다고 강조했다. 2014년 기준으로 구 삼성물산은 제일모직에 비해 매출(5배 이상), 영업익(3배 이상), 자산(3배 이상) 모두 우위였다.   

 

구 삼성물산 주가가 일부러 낮게 관리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구 삼성물산이 의도적으로 소극적인 경영을 했고 구 삼성물산 2대 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도 지속적으로 주식을 매도하며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게 형성되도록 했다는 것이 엘리엇 등의 주장이었다. 실제 구 삼성물산은 2014년 기준 건설부문이 매출의 절반 이상, 영업이익의 87%를 차지할 만큼 주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초 주택경기 회복으로 건설업종이 회복세를 맞이했지만 구 삼성물산은 침체를 이어나갔다. 

 

지난해 1월 2일 종가와 합병 발표 직전인 5월 22일 종가를 비교하면 구 삼성물산 주가는 8.9% 하락했다. 반면 이 기간 건설업 주가는 평균 28.7% 상승했다. 구 삼성물산을 제외한 주요 건설사인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모두 각각 17.2~33.0% 주가가 상승했다. 구 삼성물산이 시공능력 평가에서 2014년과 지난해 1위를 차지한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었다. 이 기간 다른 주요 건설사들이 주택 신규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와중에서 구 삼성물산은 300여 가구 공급에 그쳤다. 아울러 이 기간 국내외 공사 실적 부진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상반기 대형 신규 수주와 그룹 내 수주도 급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6월 호암상시상식에서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하지만 합병 성사 후 이런 부진은 해소됐다. 합병 당일이던 지난해 7월 17일 구 삼성물산은 하반기에 총 1만 994가구 아파트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달 28일엔 공사대금 약 2조 원 규모인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 낙찰통지서(LOA)를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앞선 5월 사전착수지시서(LNTP)를 받고도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며 합병 비율 때문에 고의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울러 그룹 내 공사 감소도 계열사들이 구 삼성물산 대신 삼성엔지니어링에게 공사를 줬기 때문이었다.

 

낮은 주가에는 국민연금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구 삼성물산 2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26일 당시 지분 11.43%를 보유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은 이후 합병 결의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주식을 내다 팔았다. 지난해 5월 22일 기준 보유 지분이 9.54%까지 내려갔다. 합병 결의 이후엔 삼성과 엘리엇의 우호지분 확보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구 삼성물산 지분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국내외 다수 자문사와 투자자들은 합병 비율 산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엘리엇은 지난해 구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한 회계법인에 의뢰한 결과를 토대로 합병비율이 '제일모직 1 대 구 삼성물산 1.6'으로 대폭 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s Services)는 지난해 7월 3일 합병 반대 권고를 내며 두 회사 간 적정 합병 비율은 '1 대 0.9530'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국민연금의 내부문서인 '제일모직/삼성물산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리서치팀도 내부 보고서를 통해 적정 합병 비율을 '1 대 0.4634'로 계산했다. 또 회계법인 딜로이트와 KPMG도 각각 합병 비율을 '1 대 0.3788', '1 대 0.4022'로 추정했다. 서울고법도 지난 5월 구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사건에서 구 삼성물산 한 주를 6만 6602원으로 결정했다. 이를 합병 비율로 산정할 경우 '1 대 0. 4256'이 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국민연금이 왜 이처럼 적극적으로 삼성 입맛에 맞게 합병에 찬성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검찰은 현재 이 같은 국민연금 투자 결정의 배경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드러날 경우 이후 삼성 측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최순실 씨 측에 대한 지원이 이에 대한 대가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야당 역시 삼성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보고 파상공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오는 6일 예정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다. 그는 이날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및 지난해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과의 만남 시 나눈 대화에 대해 집중 추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