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따분했다. 미디어는 연일 정치인의 말을 전했지만 대중은 외면했다. 먹고 살기 바쁜 일상 속 정치는 흉보기 좋은 ‘미운 시누이’로 전락했다. 가깝고도 먼 정치라는 주제를 기록하고 하나의 콘텐츠로 변화시킨 건 박종화(28) 어니언스 대표다.
박 대표 이력서에 언론사 재직 경력은 없다. 다만 수십 시간의 노숙취재와 영상 촬영, 그 속에서 만난 ‘길거리 취재원’들이 박 대표 수첩을 빼곡히 채운다. 박 대표는 이 일상의 경험과 사람을 한 데 엮어, 정치를 하나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가공해 낸다.
박 대표는 정치가 미울수록 더 살피고, 싫을수록 더 가까이 봐야한다고 믿는다. 어니언스를 정치와 일상의 간극을 메우는 연결고리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박 대표는 “정치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풀어주고 싶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일상 속 정치를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미디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9일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박종화 대표를 만났다.
◇ ‘국밥집 고민’이 낳은 어니언스
어니언스 전신은 지난 1월 만들어진 ‘모비딕 프로젝트’였다. 모비딕 프로젝트는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해 언론인 지망생 8명이 만든 모임이었다. 유권자들에게 총선에 대한 ‘알맹이 정보’를 영상, 인포그래픽, 카드뉴스 등을 통해 전달한다는 목적으로 생겨났다.
4월 총선이 끝난 후 모비딕 프로젝트는 해체됐다. ‘알리고 싶다’는 박종화 씨의 열망은 더 커져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알려야할지가 흐릿했다. 그렇게 국밥집에서 프로젝트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중 스쳐간 몇 개의 물음표가 박 씨의 머리를 울렸다.
‘왜 국밥 가격이 7000원으로 올랐을까?’, ‘국밥집 아주머니 임금은 얼마일까?’, ‘국밥집 사장님이 그 임금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월세 탓은 아닐까?’, ‘부동산 정책이 이런 국밥집 사정과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프로젝트 멤버들과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박씨는 “일상에 정치가 있다”는 깨달음 얻게 됐다. 정치미디어 어니언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어니언스는 양파(onion)와 오디언스(audience)의 합성어다. 양파 같은 일상의 정치를 청중들에게 까서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정치를 까고 까고 또 까다보면 멀어 보이는 정치가 일상으로 와닿지 않을까 싶더라. 이 선순환의 경험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 “어니언스의 장점? 우린 남는 게 시간”
지금처럼 정치가 일상에 들어온 시기는 없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술자리 안주거리가 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보니 모든 기성 언론 1면에 정치가 있다.
어니언스는 매일 ‘단독’을 쏟아내는 기성언론과 어떤 차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우리에게는 마감시간이 없다. 남는 게 시간”이라며 웃어보였다. 취재에 투자한 시간은 오롯이 더 깊은 공감이 돼 되돌아온다는 게 박 대표 생각이다.
어니언스는 지난 11월 23일 서울시 노인 정책문제를 보도했다. 기사는 ‘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총 3편에 걸쳐 나갔다. 영상과 그래픽이 결합된 멀티미디어 기사였다. 기사 구성이나 플랫폼은 유료 미디어 서비스인 ‘핀치’ 도움을 받았다.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노출되지 않은 탓에 구독자는 적었다. 화려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박 대표는 기사를 취재하고 내보내는 과정 속에서 ‘공감할 줄 아는’ 방법을 알게 됐다.
“어니언스 탄생 후 2개의 탐사보도를 진행했다. 노인과 선거비용을 다룬 취재였다. 노인문제의 경우 팀원 3명이 종로 공원에 가서 한달 반 동안을 노인들과 동고동락하며 취재했다. 잔술집 가서 한잔 천 원 하는 술잔 기울이며 할아버지들과 얘기도 나누고 장기도 뒀다. 결국 서울시의 도시 성역화 사업이 노인들의 쉴 곳을 지워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들의 삶 속에 직접 들어가고 나서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또 공감할 수 있겠더라.”
◇ “수익창출은 고민, 하지만 돈 아닌 독자 좇겠다”
박 대표는 미국 비영리 탐사보도단체인 탐사보도센터(CIR)에서 귀감을 얻었다 했다. CIR은 구글과 협력하며 무인기(드론)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등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탐사보도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동시에 탐사보도를 통해 송곳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박 대표는 기사전달 방법이 다각화되더라도 결국은 심도 깊은 취재가 독자의 관심을 부를 수 있다고 믿는다.
저널리즘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박 대표의 최근 고민거리는 ‘먹고사니즘’이다. 즉, 스타트업 대표로서 수익구조가 고민이다. 기존 언론사들이 기업 광고에 의존하며 수익을 창출하지만, 어니언스는 정식 인터넷언론으로 등록하지 않은 탓에 광고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좋은 뜻으로 모였던 12명의 구성원은, 현재 3명까지 줄어들었다. 생계라는 현실은 꽤나 높은 장벽이 됐다.
어니언스가 찾은 대안은 유투브(Youtube)다. 유투브에 영상콘텐츠를 올려 시청수가 누적되면, 수익이 창출된다. 다만 그렇게 발생되는 수익이 아직은 크지 않다. 그러나 박 대표는 언론사는 돈이 아닌 독자를 좇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현실을 탓하며 돈을 고민하다가는 오히려 대안언론의 존립 이유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어니언스가 스타트업으로서 당장의 기성언론을 뛰어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치를 보다 쉽게, 보다 진실 되게 전달하겠다는 포부를 이뤄낼 수 있다면 어니언스가 기성 언론과 ‘1%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박 대표는 어니언스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 희망이 바로 그 지점에 있다고 했다.
“어니언스가 되고 싶은 언론사는 사랑받는, 후원 받을 만한 언론사다. 광고나 클릭 때문에 수익을 벌어드리는 게 우리의 창업 목표는 아니다. 전해야만 하는 이야기와 정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궁금증을 해갈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후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언론사가 되는 게 목표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 어른들이 말하는 미래세대를 위한 진보가 그곳에 있지 않을까.”